[탈북민 구출기] ① “도와주세요”…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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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중국 내 탈북민 구출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중국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한층 강화해 이동이 어려워졌고, 덩달아 탈북 비용까지 급등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탈북민과 이들을 구하려는 구출 단체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올해 6명의 탈북민을 구출한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오늘날 탈북민 구출 활동의 현주소를 들어봤습니다.
[중국 내 탈북민 구출기]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는 탈북민 구출 과정을 천소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코로나 이후 재개된 약 3년 만의 구출 활동
한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 사무실.
지철호 정착지원실장은 최근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과거 중국 내 탈북민 구출을 함께 도왔던 브로커였는데, 이번에 또 다른 탈북민을 구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지 실장이 전한 탈북민 구출의 시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탈북민이 전화 또는 전자우편을 통해 직접 구출 요청을 하는 경우.
둘째, 브로커가 대신 연락하는 경우.
그리고 세 번째는 지인을 통한 요청입니다.
그렇게 중국 내 탈북민과 연결이 닿으면 직접 영상 통화를 진행하게 됩니다. 정말 북한에서 온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철호] 연결이 되면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지 확인합니다. 물어보는 건 간단해요. 실제 탈북민이 맞는지 알려면 북한의 주소, 출생지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사진은 크로스 체크(비교 검토)를 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해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니까요. 또 지역을 말하면 어느 정도 느낌이 옵니다. 대부분 함경북도나 양강도에서 오기 때문에 북한 고유의 사투리가 있습니다. 사투리로 질문하는 거죠. 그래서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확인하다 보면 ‘탈북민이 맞구나’라는 걸 알게 되죠.
일부러 외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섞어 쓰기도 합니다. 탈북민을 위장한 간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철호] 그런 말들을 하다 보면 이 사람이 알아듣고 같이 반응하죠. 중국에 오래 계신 분들의 경우 중국 말만 하다 보니 북한 말을 까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투리로 질문하면 중국말로 대답하지만, 사투리는 알아들어요. 이분이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북한말을 까먹었지만, 의사소통이 되는 걸 보면서 ‘이분들이 한국에 오게 되면 한글을 다시 배워야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하죠.
어느 정도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에는 탈북 이유를 묻습니다.
‘중국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한국에 오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질문하는데, “돈을 벌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다”, “국적을 갖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 등 다양한 대답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지철호] 물론 잘 살다 온 분도 있고 못 살다 온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탈북민이 고정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난의 행군 때라든지, 어떻게 살았다든지…. 그런데 제가 과거에 북한에서 살던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 이 사람, 탈북자가 맞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탈북민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본격적인 구출 작업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중국 현지의 탈북민과 브로커, 지 실장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지철호] 이 사람이 탈북자가 맞는지, 간첩은 아닌지에 대해 간단하게 신상을 파악하고 나서 브로커에게 ‘구출을 시작하자’고 연락하면 구출이 시작되는 겁니다.
지 실장은 지난 5월에 구출 활동을 진행한 20대 후반의 여성 탈북민이 기억에 남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북한을 탈출한 이 여성은 한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탈북 후 중국에서 10년 넘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지철호] 탈북민 대부분은 팔려 갑니다. 간혹 100명 중 한 명 정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건 정말 극히 일부분입니다. 중국에서 탈북민의 삶은 말 그대로 팔려 가서 물건 취급을 당하고….
어렵게 ‘나우’와 연락이 닿은 그녀의 구출이 결정됐고, 지난 5월 지 실장은 직접 이 여성을 포함한 4명의 탈북민을 만나기 위해 메콩강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의 감시∙통제로 메콩강까지 가는 것도 어려워
지난 5월 20일.
지철호 실장이 찾은 메콩강은 그날도 평온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탈북 여정의 마지막 관문이지만, 요즘은 메콩강을 건너는 탈북민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중국 내 감시와 통제가 한층 강화돼 이곳까지 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지 실장은 탈북민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을 떠난 탈북민들이 제3의 안전국을 거쳐 메콩강까지 올 계획이었지만, 삼엄해진 중국의 감시 탓에 약속한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한 겁니다.
[지철호] 원래 일정으로는 저희는 (한국에서) 떠나고, (탈북민들은) 중국에서 떠나기로 돼 있었는데, 저희는 예정대로 갔는데 그때 당시 중국에서 단속이 심해져 탈북민들은 예정대로 (메콩강 쪽으로) 오지 못하다 보니….
메콩강을 건넌 탈북민들의 안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들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안전한 장소에 들어간 것을 영상으로 확인한 뒤에야 지 실장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기자] 이제 어떻게 되나요? 동남아시아 제 3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오게 되는 건가요?
[지철호] 보통 그 나라에서 오게 됩니다. 약 한 달 뒤 (한국으로) 올 수 있습니다.

탈북민이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시아 제3국에 밀입국하면 그 길로 현지 경찰서로 향합니다.
경찰서에 가서 자신의 밀입국을 자수하면 ‘불법 이민’ 혐의로 벌금을 내고, 그 나라의 이민국으로 보내지는데, 지 실장은 이 과정에서 탈북민들이 들뜬 표정으로 경찰서를 향해 가는 역설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철호] 원래 사람이 경찰서 가는 것이 기분 좋을리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이민국에 간다고 하니까 신나서 가는 거예요. 작은 경찰서 같은 경우에는 안 받아줘요. 큰 데 가라고 쫓아내거든요. 그러면 전화가 오는 거예요. 경찰서에서 안 받아준다고. 다른 데 가라고 하는데 지금 못 들어가고 기다리고 있는데 속이 탄다고.
이민국에 이송된 탈북민은 ‘난민 수용소’에서 지내게 되는데, 사실상 이동이 제한된 ‘수감소’에 가깝다고 지 실장은 덧붙입니다.
하지만 이곳도 탈북민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바라던 한국에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에 1명, 5월에 4명, 7월에 1명.
‘나우’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 중단됐던 탈북민 구출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고, 올해 중국에 있던 여섯 명의 탈북민을 구출했습니다.
현재 동남아시아 제 3국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는 탈북민들은 곧 그토록 바라던 대한민국 땅에 첫 발을 내딛을 예정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