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소녀의 마음으로 무대에 섭니다”
2023.09.15
앵커: 미 연방 의회에서 지난 14일 “Sell Me, I’m from North Korea(나를 팔아, 나는 북한에서 왔어)”란 연극이 공연됐습니다.
중국의 한 가정집에 팔려가면 북한에 있는 어머니의 약값을 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국경을 넘었지만, 너무도 다른 현실에 맞닥뜨린 15살 탈북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요. 이날 연극을 본 관객들도 “정말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냐”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탈북 소녀 ‘지선’의 이야기를 풀어낸 연극의 극작가이자, 연출자이자, 배우인 백소라 씨는 서혜준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북한 소녀의 탈북여정 다룬 연극, 미 의회서 개최
[기자] 백소라 배우님. 안녕하세요, 먼저 간략히 자기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소라] 저는 백소라고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제가 미국에 온 지는 2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넘게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극 배우로서의 생활은, 한국에서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제 친구들도, 저도, 저희 부모님도 그러는데 저는 대학을 다녔다기보다 대학 연극 동아리를 다녔어요. 그때 대학 연극제가 있는데 거기서 우수상도 받았어요. 너무 재미있고, 더 하고 싶었는데 그때만 해도 제가 어리고 부모님께서 제가 연극하려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그럼 아주 멀리 가서 연극을 해야겠다’ 그게 동기가 돼서 미국에 왔어요. 미국에 와서 맨 처음에는 말을 너무 못하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그때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자] 미 의회에서 공연한 ‘Sell Me’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백소라] ‘지선’이라는 소녀가 탈북을 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브로커가 관련돼 있고요. 이런 과정을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에게 ‘아, 탈북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이게 정말 죽음과 삶의 문제다’라는…그러니까 북한에서 태어난 이 10대 여자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남한이나 미국에서 15살 여자 아이들이 사는 삶이 있잖아요. 그 세대들이 겪는 2차 성장도 있고, 감정적이나 신체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고, 주인공 ‘지선’이도 그런 것을 다 겪거든요. 그런데 이 주인공은 항상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런 걸 겪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내용이 실화는 아니지만, 사실과 전혀 멀지 않아요. 왜냐하면 모든 (탈북) 이야기를 합친 거거든요. 제가 그동안 (관련 자료를) 보고 읽은 것을 다 합친 게 약 50%고, 제가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극작가로서 제 창의성과 호기심, 그리고 연극에서의 기술적인 면들을 합쳐 이 이야기를 만들었죠.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 작품에서 연기뿐 아니라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도 하셨는데, 어떻게 탈북 소녀에 관한 연극을 기획하게 되셨나요?
[백소라] 제가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에서 ‘필름(film)’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필름보다 연극이거든요. 그래서 뉴욕으로 가서 ‘오프브로드웨이’ 소속사에 들어갔는데, 극단 생활하면서 참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한 몇 년 연극을 쉬었는데 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거예요. 미국인 친구인데 본인도 읽었고, 자기 아들이 고등학교에서도 읽은 책인데, 너무 좋았다면서 저보고도 읽으래요. 그래서 봤는데 탈북자에 관한 책이었어요. 읽고 나서 너무 충격적었고, 부끄럽더라고요. 제가 남한에서 자랐는데, 내가 이렇게 북한을 모르는구나... ‘북한이 정말 이래? 내가 너무 무관심했고, 북한에 대해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북한 탈북자에 관한 책을 정말 많이 주문했어요. 그걸 다 읽은 거예요.
한국 프로그램도 보게 되고, 유튜브에도 탈북자분들 영상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꽃제비’라는 것도 알게 되고, 저 애들은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런 취급을 받고 저런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게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밤에 잠도 안 오고요. 그래서 혼자 울고, 내가 지금 북한에 가야 되나 싶을 정도로… 그때까지 저는 북한 인권에 관한 활동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영어로 말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영어로 글을 쓴다는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제는 쓰고 싶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읽었던 것, 들었던 것, 봤던 것, 생각했던 것을 쓰고 싶더라고요. 문법도 안 맞았지만, 그냥 쓰게 됐습니다.
“이게 정말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미국인들 충격
[기자] 이 연극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백소라]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대면 공연을 못하다가 작년에 미국 아리조나 주의 세도나에 공연을 하러 갔었어요. 나이 드신 상류층 분들이 거기서 은퇴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믿지를 못해요. 생각해 보면 이분들이 미국에서 상류층으로서 굉장히 편하게 평생을 살아왔으니까 북한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공연을 하면서 좋아하는 부분이 질의응답 시간이거든요. 공연이 끝난 다음에 질문을 받으면서 관객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내 작품이 저 사람한테 어떤 마음을 주었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내가 뭘 할 수 있나요? 어떻게 도울까요?”였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생각을 제가 바꾼 거잖아요. 그런(북한 인권) 쪽으로 의식을 가질 수 있게요. 그래서 제가 제 연극을 보여주고 싶은 대상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북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아니면 북한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와서 (제 연극을) 봤을 때 북한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그 한 사람이 나가서 (북한에 대해) 5명한테 얘기를 하고, 그 5명이 또 나가서 15명한테 얘기를 하면 나중에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정치적인 영향력은 없지만 사람들한테 더 알려주고 싶은 것 같아요.
[기자] 이번에 미국 의회에서 공연을 하셨는데,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곳이 뉴욕과 뉴저지였다면서요?
[백소라] (쓰다 보니) 제가 조그마한 연극을 두 편을 썼더라고요. 뉴욕 맨해튼에 가면 거기가 워낙 연극의 도시이기 때문에 연극에 관한 자원이 굉장히 많아요. 그중 하나가 여러 작가들이 모여서 서로 (작품을) 읽어보고 감상평을 주는데, 저는 작가도 아닌데 그냥 갔어요. 가서 (제 연극을) 발표했거든요. 딱 끝났는데 방이 너무 조용한 거예요. 그래서 ‘이거 뭐지? 사람들이 너무 안 좋아했나’ 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다 충격을 받고 ‘이게 진짜냐, 네가 북한 사람이냐, 이게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냐’ 그러면서 너무 놀라고 더 알고 싶어 하더라고요. 보통 저는 99%가 다 한국분이 아닌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이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김정은’, ‘핵무기’, 그게 끝이에요. 그 안에서 진짜 일어나는 일,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매일 겪어야 되는 일들이 뭔지를 몰라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거구나, 사람들한테 알려야 되는구나’ 싶었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작가로서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썼어요.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준비해 온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극이 끝나면) 보통 백인분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절 따라와요. 따라와서 헷갈려하세요. 정말 북한에서 왔냐고. 그러니까 너무나 신기하고, 이런 얘기를 처음 들어보는 거예요. 또 정식 개봉은 아니었는데, 2019년 12월에 제가 뉴욕 맨하탄에서 열린 ‘국제인권페예술스티벌 (International Human Rights Festival)’에서 (연극을) 20분짜리로 줄여서 공연했거든요. 그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때 힘을 정말 많이 얻었고, 그때 팀이 형성돼서 뉴저지 ‘연극센터(Theater Center)’에서 첫 개봉을 한 거예요.
[기자] 비슷한 주제로 다음 작품을 준비 중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백소라] 제가 두 편을 연극을 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두 번째 연극을 천천히 더 다듬어 가고 있거든요. 지선이, 그러니까 ‘Sell me, I’m from North Korea’랑은 다르게 이 (두 번째) 작품은 중국에 팔려가 결혼해 겪게 되는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한 이유는, 똑같은 탈북민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관점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리고 작품에서 그 주인공들의 목표가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거죠.
[기자] 북한 소녀의 탈북 이야기인 만큼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계신데 어떤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시나요?
[백소라] 저는 항상 연극 무대에 설 때 제 뒤에 정말 많은 여성분들이 서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가 15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15살 여자아이로 설정한 이유는 제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북한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과 어려움, 눈물 등을 다 (무대에) 들고 나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무대에 나갈 때 항상 혼자 나간다는 생각을 안 해요. 여자 군대가 제 뒤를 따라와서 저를 받쳐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사람들한테 북한 인권 문제가 알려지고, 인식제고를 위해 제가 조금이라도 사용된다면 그게 저에게는 정말 영광이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임하는 것 같아요.
[기자] 관객의 입장에서 이 연극을 볼 때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을까요?
[백소라] 이게 좀 무거운 주제잖아요. 제목 자체도 그러니까 (관객분들이) 많이 굳으세요. 그런데 그냥 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을 열고 웃기면 웃으시고, 울고 싶으면 우셔도 되고, 같이 한숨도 쉬어주셔도 되고요. 지선이랑 이 여행을 같이 하신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Sell Me, I’m from North Korea”를 공연한 백소라 배우와의 대담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