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고위층, 싸게 산 금으로 재테크
2024.07.12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주민이 개울가에서 땅을 파고, 모래를 걸러 금을 채취하는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특히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4~5월이 되면 먹고살기 위해 금을 채취하는 북한 주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채취한 금은 당 간부 등에 싼값에 팔리고, 이는 다시 중국에 비싼 값에 판매되면서 북한 고위층의 재테크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서혜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보릿고개 시기, 금 채취하는 사람 많아져
[영상 속 대화]
[남성1] 금 잡는 사람이 많구만요.
[남성 2] 금값이 올라갔으니까…
2023년 4월과 5월, 북한 황해남도 벽성군과 강령군에서 각각 사금을 채취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 속 두 남성의 대화입니다.
지난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입수한 이 영상에는 장화를 신고 마스크를 쓴 두 북한 남성이 개울가에서 금을 채취하기 위해 긴 나무 자루를 연결한 끄레(곡괭이)로 모래를 걸러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남성은 열심히 마른 강 바닥을 파내려가고 있는데, 그 깊이가 남성의 허리 높이에 달합니다.
뙤약볕에도 이들이 개울가에서 금을 캐는 이유는 적은 양이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섭니다.
북한에서 직접 해당 영상을 촬영한 탈북민 김일혁 씨는 북한에서 4월과 5월은 보릿고개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사자가 많이 속출하는 때라며, 먹고살기 위해서 특히 이 시기에 금을 채취하는 사람이 많다고 RFA에 밝혔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한 북한 남성은 “금값이 얼마냐”는 질문에, 순금 1g 당 북한 돈 40만원(미화로 약 50달러)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이 남성은 하루에 0.02 ~ 0.03g의 사금을 채취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북한돈으로 약 8천원, 미화로 약 1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씨는 북한에서 개인적인 금 거래는 불법이기 때문에 일반 주민이 채취한 대부분의 금은 노동당 간부들에게 판매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일혁] 북한에서는 개인이 금을 만질 수 없거든요. 그게 불법이기 때문에 대부분 간부들이 이런 (금 거래) 일을 합니다. 이게 단속이 되고 ‘금을 어디서, 누구에게 샀는지’ 알려지면 (판매한 사람이) 죽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 권위와 힘이 있는 집에 금을 파는 거죠.
실제 북한에서 금 거래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던 김 씨는 “당 간부들이 주민에게서 싼 값에 산 금을 다시 중국에 비싼 값으로 판매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일혁] 노동당 39호실 당자금으로 금을 종합적으로 모아서 바치면, 그 금을 (중국 등에) 판매해서 현금화 하거든요. 거기서도 돈을 필요로 하니까 순환을 하는 겁니다. 당에서도 대대적인 장사를 하는 거죠.
또 김 씨에 따르면 일반 주민도 직접 중국에 금을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현실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싼 값에 금을 은밀히 거래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김일혁] 일단 북한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금을 몸에 소지하고 국경까지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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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엘리트 계층 출신의 탈북민 이현승 씨도 10일 RFA에, 북한에서는 금을 국가가 통제하기 때문에 내부 유통이나 수출을 매우 엄격히 통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현승] 북한의 39호실 금강총국에서 금 수출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생산과 수출을 독점하고 있죠. 개인 판매는 절대 안 되고, 걸리면 감옥에 가야 됩니다. 북한에서 ‘수매를 받는다’고 해서, 상점들에 금을 가져오면 물건을 교환해 줍니다. 보통 그 가치를 북한 정권이 매기는 거예요.
하지만 북한에서 개인이 채취한 금을 직접 판매하는 것도 만연해졌기 때문에 국가보위부나 당 일꾼들이 뇌물을 받고 이를 눈감아주는 사례도 있다고 이 씨는 설명했습니다.
[이현승] 금을 국가가 통제해서 다 가져가잖아요. 이걸 배분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석탄은 그나마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월급도 주고, 식량도 주곤 했는데, (금은) 수요가 보장이 안 되니까 사람들이 금을 캐고 팔아서 자기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거죠. 그런데 금 광산이나 사금 채취장 등에서는 다 보편화된 거니까 서로서로 눈 감아주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에서는 국제 정세나 내부 유통 상황에 따라 금값이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는 한때 금 1g이 북한돈으로 6만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금에 관한 유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금을 채취하는 사람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김일혁] 코로나 때부터는 금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지만, 금값 자체도 완전히 하락 했거든요. 예전엔 유통이 됐으니까 금값이 조금이라도 오르고 내리고 했는데, 국가에서도 이 업(금 거래)을 중지했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유통이 안 되니까 금을 사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또 금을 판매할 곳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금 캐는 일을 그만뒀고, 금시세도 하락했었죠.
하지만 이마저도 북한의 고위층이 품질이 좋은 중국산 귀금속을 선호하면서 북한에서 채취한 금의 수요나 유통도 감소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이현승] (북한에서) 제가 아는 지인이 금을 사서 목걸이 만들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북한의 금 가공업은 발전이 안 됐지만, 북한에서만 살던 사람은 ‘이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중국 등 해외에 나와보면 훨씬 더 발전됐으니까 북한에서 생산된 귀중품들을 안 사더라고요.
7월 11일 현재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순금 한 돈(3.75g)은 미화로 약 330달러에
달하며, 국제 금값도 6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또 지난 2월 중순 이후로 국제 금값은 계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반 북한 주민에게는 금이 투자가 아닌 끼니를 해결하는 생존 수단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