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풍선’서 기생충 검출...훼손된 ‘수령 교시’도 나와

서울-홍승욱 hongs@rfa.org
2024.06.24
‘오물 풍선’서 기생충 검출...훼손된 ‘수령 교시’도 나와 북한 오물 풍선에서 나온 천조각들.
/한국 통일부

앵커: 북한이 날려 보낸 이른바 ‘오물 풍선’에서 기생충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풍선에 담긴 퇴비에서 나온 것인데, 인분을 비료로 쓰는 열악한 생활 환경을 추정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말부터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향해 1천 6백여 개의 이른바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낸 북한.

 

풍선에 담긴 오물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북한의 열악한 환경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여럿 포착됐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24일 대남 오물 풍선 70여 개를 수거해 전문기관에 의뢰한 분석 결과를 통해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에 담긴 퇴비 등에서 기생충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살포된 오물 안에 담긴 토양에서 회충, 편충, 분선충 등 기생충 여러 종류와 사람의 유전자가 함께 발견됐는데, 결국 인분에서 나온 기생충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토양을 통해 감염되는 ‘토양 매개성 기생충’은 화학비료 대신 인분을 쓰는 경우나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에서 발생하며 주로 보건환경 후진국에서 발견됩니다.

 

다만 이번 오물 풍선에 담긴 토양은 적은 양으로, 한국 군이 수거해 관리했기 때문에 토지 오염이나 감염병 등의 위해 요소는 없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입니다.

 

풍선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대원수님 교시’라고 적힌 문건 표지가 반으로 잘린 것이나 ‘조선로동당 총비서’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도 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오물 살포에 일반 주민들도 동원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긴급한 동원으로 북한 주민들의 오물 살포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수령 교시’ 문건을 훼손하는 행위를 중죄로 다루고 있습니다.

 

풍선에서 함께 발견된 천 조각에선 열악한 북한 내 주민 생활 실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통일부는 “일반 쓰레기보다는 일정한 크기의 폐종이, 비닐, 자투리천 등 이번 살포를 위해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수였다”며, 플라스틱 병의 경우 상표나 뚜껑을 제거해 상품 정보 노출을 막으려 한 흔적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물 풍선 살포를 계기로 주민 생활상과 경제난, 인권 실태가 외부에 알려지는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몇 번씩 기운 양말이나 옷감을 덧대 만든 장갑, 마스크, 티셔츠 등 북한 주민의 어려운 생활을 보여주는 생활필수품 쓰레기도 함께 식별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과거 한국 업체가 북한에 지원한 넥타이나 상의 등 의류를 가위나 칼로 자른 듯한 천 조각도 발견됐는데,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는 것이란 분석입니다.

 

해당 업체는 지난 2000년부터 북한에 의류를 지원해 왔고, 한국 정부 당국은 상표를 보고 대북 지원 의류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한 탈북민 단체는 지난 22일 쌀과 구호 물자를 담은 플라스틱 병 2백 개를 북쪽으로 방류했다고 23일 밝혔습니다.

 

탈북민 단체 ‘큰샘’에 따르면 이 단체는 강화도에서 쌀과 1달러 지폐, 구충제, USB 등을 넣은 병을 북한으로 향하는 조류에 맞춰 흘려 보냈습니다.

 

다만 이 단체는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해온 활동일 뿐”이라며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한 것과는 연관성이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박정오 큰샘 대표의 말입니다.

 

박정오 큰샘 대표: 배고픈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와서 미역 줄기라도 걷어 먹는데, 그 때 우리가 보낸 쌀이라도 찾으면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난 2015년부터 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큰샘’ 측은 이 같은 활동이 민간 차원의 대북 구호물자 보일 뿐이라며, 북한 측 반응과 관계 없이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또다른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0일 밤 경기도 파주에서 북쪽으로 전단과 1달러 지폐, USB 등을 담은 대형 풍선 20개를 띄운 바 있습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1일 오후 공개한 담화에서 대북 전단 등에 오물 풍선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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