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찬양 작품 못 썼다’ 북 작가들, 집단 반성문 작성
2024.10.25
앵커 : 북한 당국이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문학 작품들을 제대로 창작하지 못했다는 구실로 조선작가동맹의 소설가,시인들을 상대로 대논쟁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양강도 작가동맹의 소설가와 시인들이 사무실에 갇혀 ‘대논쟁 투쟁’을 벌리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대논쟁 투쟁은 잘못된 문제의 뿌리 즉 원인을 완전히 파헤치는 강력한 사상투쟁으로 일반 사상투쟁회의에 비해 강도 높게 진행됩니다. 보통 한 명씩 앞에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방식입니다.
양강도의 한 대학생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2일 “중앙당 선전선동부와 조선작가동맹이 무리하게 강행한 ‘10일창작전투’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며 “김정은 찬양 작품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구실로 작가(소설가)와 시인들이 대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10월 12일부터 시작된 대논쟁 투쟁은 31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조선작가동맹은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열흘간을 노동당 창건 기념 문학창작전투 기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에 각 도 작가동맹의 모든 작가들에게 김정은의 업적을 찬양하는 문학작품을 창작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 소설가들에겐 수필과 단편소설을, 시인들에겐 서사시와 서정시를 쓰도록 했다”며 “특히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 수 있는 서정시 창작을 모든 작가(소설가), 시인들에게 최우선으로 권고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문학창작전투는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9월 초부터 예고하고 진행했다”며 “양강도당 선전선동부는 창작전투가 벌어지는 열흘 동안 양강도의 작가(소설가)와 시인들이 작가동맹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문학작품을 창작하도록 조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상 가두어 놓고 억지로 글을 쓰게 했다는 건데 “가을철 뙈기밭에 심은 곡식을 거둬들여야 하는 작가와 시인들은 밤에 몰래 사무실에서 탈출하기도 했다”며 “양강도의 작가와 시인들은 글 쓰는 것이 직업이지만 생활고가 심해 대부분 뙈기밭 농사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고 소식통은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중앙에서는 어떻게 하나 좋은 작품을 건지기 위해 창작전투 마감 날짜를 10월 5일에서 8일까지 연장까지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면서 “이를 심각히 여긴 중앙당 선전선동부가 10월 8일, 조선작가동맹에 대논쟁 투쟁을 지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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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4일 “고급 냉동기(냉장고)와 텔레비죤(TV), 컴퓨터를 상으로 걸고 진행한 조선작가동맹의 ‘10일창작전투’가 싱거운 결말을 맺었다”면서 “상을 탄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대논쟁 투쟁만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중앙에서는 이번 문학창작전투를 매우 중요한 기회로 보고 있었다”면서 “이번 창작전투 기간에 과거 김일성 시대에 나온 ‘나의 조국’, ‘어머니’와 같은 서정시,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와 같은 찬양가요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대표적 시인 김상호가 1979년 쓴 ‘나의 조국’, 시인 김철이 1981년 발표한 ‘어머니’는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북한 시문학의 최고작으로 꼽힙니다. ‘대를 이어 충성을 하다렵니다’ 역시 김정일의 후계 세습을 정당화하는 대표적 ‘충성의 노래’이자 찬양가요입니다.
“하지만 조선문학이나 천리마와 같은 잡지에 대충 올릴 작품들은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정작 1970년대와 80년대에 창작된 것과 같은 기념비적 문학작품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또 “중앙에서는 이번 창작전투의 실패를 작가와 시인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 부족에서 찾고 있다”며 “각 도 별로 출판보도부문, 선전선동부문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작가들을 사상투쟁 무대에 올려 세우고 잇달아 성토하는 대논쟁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식통은 “양강도 작가동맹의 경우 창작전투 현장을 몰래 이탈해 집으로 갔다 온 작가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면서 “이들은 작가동맹 사무실에 갇혀 가족들이 가져다주는 속옷을 갈아입으며 밤낮이 따로 없이 비판서와 반성문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하필이면 가을철에 창작전투를 벌려 가뜩이나 생활이 어려운 작가와 시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뙈기밭 농사나 짓고,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작가와 시인들로 창작전투를 벌여 봐야 무슨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