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파병에 러 학교서 반미∙주체사상 교육 화답
2024.10.31
앵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선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러시아에서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반미사상을 가르치는 교육 활동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홍보하려는 의도지만, 러시아 대중의 인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 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북한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단체가 설립됐습니다.
지난 10월 29일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TASS)에 따르면, 하바롭스크 제80학교 교사 블라디슬라프 쿠쉬니렌코 씨는 “하바롭스크 주재 북한 영사 리성일의 동의와 지원을 받아 주체사상연구청년회를 창설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이 단체의 목표라며, “하바롭스크의 다른 학교 학생들도 함께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체의 학생들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 침략자들의 패배’, ‘조선인민군 공군의 역사와 현대성과 미래’, ‘김정은 하의 북한 경제 발전’ 등을 주제로 공부할 예정입니다.
쿠쉬니렌코 씨는 이미 세 차례 행사를 조직했으며, 그 중 하나는 김일성 전 주석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1권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30일 러시아 매체 아스타로즈나 미디어(Осторожно Media)와의 인터뷰에서 한 시간 반의 대화가 순식간에 지나갔으며, 학생들은 김일성의 문학적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월 북한의 초청을 받아 동료 18명과 송도원 어린이 캠프에 참가했다는 쿠쉬니렌코 씨는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빈곤, 기아, 쇠퇴에 대한 서방 언론의 이야기가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면서 “모스크바와 평양의 동맹이 강화될수록 미제국주의의 붕괴가 더욱 가까워질 것을 확신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최근 모스크바 근교 도시 세르기예프 포사드의 사회경제기술학교에서는 북한 노동당 창립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러시아의 친정부 청소년단체 ‘첫 번째 운동’과 ‘조러우호클럽’이 주최했으며, 학생들은 ‘노동당의 전투 조직’, ‘북한에 대한 오해’, ‘왜 우리가 북한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가’ 등을 주제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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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행사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러시아 내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학교의 교장과 행정 부서들이 러시아 정부의 현 정책 기조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란코프 교수] 어쩌면 북한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 거짓이지만 학생들이 미국의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믿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지속적이거나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잘 설계된 사상이 아닙니다.
란코프 교수는 특히 북한이 가르치는 한반도의 역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며, “북한은 자신들이 일본에 맞서 독립적으로 싸워 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역할을 강조하는 러시아의 공식적인 역사관과 충돌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스카 피에트레비치(Oskar Pietrewicz) 폴란드국제문제연구소(PISM) 아시아태평양 선임연구원 역시 이날 RFA에 “러시아 대중의 사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전에 불과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내 주체사상 연구와 북한 관점에서의 반미 시각 확산을 위한 단체의 증가는 단순히 러시아와 북한 간의 관계 강화에 대한 선전적 행위일 뿐, 러시아 시민들의 세계관을 크게 형성할 요소는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전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 관계가 됐다는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목적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