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효과 날라” 북, 남한 계엄사태에 침묵
2024.12.09

앵커: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이에 따른 대통령 탄핵 추진에 대한 북한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의결을 통한 해제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북한은 여전히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요,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굳이 이번 사태에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며 섣부른 도발이 가져올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매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뒤이은 야권의 윤 대통령 탄핵 추진 등 남한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9일 현재,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물론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모두 윤 대통령의 3일 심야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계속되고 있는 후폭풍을 일체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노동신문은 비상계엄과 탄핵, 정부 비판 여론 등 남측의 정국 혼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달 하순부터 남측을 ‘괴뢰 한국’으로 지칭하며 윤석열 정부 퇴진 촛불집회와 시국선언 관련 보도를 이어오던 태도와 대조적입니다.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같은 북한의 침묵이 역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의 민간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의 조나단 코라도(Jonathan Corrado) 정책국장은 9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 시위 당시 북한이 시위 사진을 자국 매체에 보도하며 의도치 않게 두 가지 역효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로 당시 서울 광화문 시위 사진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유리로 뒤덮은 고층 건물들로 둘러싼 남한의 현대적인 도시 모습을 보여주었고, 둘째로 남한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수준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는 나아가 “김정은 정권이 (남한의) 혼란을 이용해 (한미) 동맹을 분열시키거나 남한을 압박하고, 지리적 이점을 얻기 위해 도발을 감행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역시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이는 오히려 비상계엄의 안보 정당성을 강화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고 특히 현재 시점에서의 도발은 향후 남한 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다 북한의 섣부른 도발은 내달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초기에 망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탈북민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도 북한이 이번 사태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은 자신들이 나서서 선전하지 않아도 윤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보고 있고, 오히려 나선다면 윤 대통령, 보수세력에 (탄핵 반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침묵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이 이번 사태에 직접 나서기보다, 대남 공작 조직을 통해 은밀히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현승 위원] 북한이 공개적인 선전물을 통해서 한국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통일선전부라든지, 정찰총국이라든지, 한국에 영향을 주기위해 움직이는 조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조직들은 대남 공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지하망을 통해서 지시상황을 전달할 수는 있겠죠
또한 그는 최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무산되는 등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인 만큼, 결론이 난 뒤 북한이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미 연구기관 스팀슨 센터의 이민영(Rachel Minyoung Lee) 선임 연구원도 “북한의 장기간 침묵은 신중하게 관망하거나, 사건의 전개를 지켜보며 무엇을 말할지 결정하지 못했거나, 혹은 적절한 시점에 쏟아낼 부정적 수사를 준비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며 “북한이 주목할 만한 사건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하고, 아예 반응하지 않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한의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며, 윤 대통령의 운명도 불확시하기에 북한은 윤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되기를 기다렸다가 논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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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랩슨(Robert Rapson) 전 주한 미국대사 역시 북한의 침묵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굳이 도발을 감행해 윤 대통령과 보수당이 저지른 엄청난 정치적 실수와 반민주적 행보에서 시선을 돌리려 하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이미 비상계엄과 탄핵안 표결 거부가 윤석열 정부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과 한국이 뜻을 같이하는 다른 파트너들과의 관계에도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이 굳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겁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을 지낸 시드니 사일러(Sydney Seiler)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역설적으로, 북한은 보통 한국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침묵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경우에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우려를 확인시키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북한은 대응 시기와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단기적으로 상황을 악용하기 위한 전술적 시도는 자제할 가능성이 높으며, 대신 윤 정부보다 북한에 유화적인 접근을 지지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변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이 사일러 선임고문의 분석입니다.
북한이 더 이상 남한을 주요 관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미국 보스턴대 정치학과 방문학자인 강 부(Kang Vu) 박사는 9일 호주(오스트랄리아) 민간연구소인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 기고문을 통해 “북한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남한을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부패한 국가로 묘사하며 적극 활용했지만, 이번에는 최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 강화로 인해 남한을 주요 관심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그는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력함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과거 대북전단에 군사적 반응을 보이던 것과 달리 절제된 대응으로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