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남소음에 접경 주민들 “차라리 귀 먹었으면…”
2025.01.01
[현장음] 기괴한 소음
지난 12월 중순 한국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의 밤.
드물게 켜진 가로등 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옵니다.
늑대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 배경음 같기도 합니다.
철조망과 한강 너머 북한 땅에서 들려오는 소립니다.

대남 확성기가 보이는 집에 사는 사람들
[안효철 씨] 스피커는 봤어요? 여기가 우리 딸네에요. 맞은 편이 우리 집이고.
당산리 이장 안효철 씨의 집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
다음날 한낮에도 소음은 계속해서 들려옵니다.
[안효철 씨] 여기 딱 보면 하얀 사각형 있죠, 북한 산에. 그게 스피커에요.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돼. 별난, 희한한 소리예요. 소리가 똑같은 게 아니라 맨날 다르다고요.
소음은 가을걷이가 끝난 황토색 논밭을 지나 안 씨의 집까지 직선으로 전해집니다.
[안효철 씨] 난 이거 먹는다니까, 약. 알을 보여줄게요. 이게 신경 안정제인가 뭐 그런 건가 봐요. 처음엔 차도 운전 못 했어요, 물체가 두 개로 보여서.
그가 겉옷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플라스틱 약병에 검붉은색 알약이 십여 개 들어있습니다.
[안효철 씨] 내가 58년 개띠인데, 평생 안경을 안 썼는데 10월 2일에 갑자기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거예요. 안과 갔더니 다 눈에는 이상 없다고 가톨릭병원 뇌과(신경과)에 갔더니 뇌에서 눈으로 오는 4번 신경이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켜서 그렇다는 거에요.

“이러다가 치매라도 걸릴까 싶어”
[박윤정·이지홍 상담사]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잠시 앉아계세요, 어머니. 저희는 강화군 보건소 내에 있는 강화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왔고요.
강화군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사들이 이른 아침부터 송해면 상도1리 마을회관을 찾았습니다.
상담사들이 가져온 상자에는 귀마개, 안대, 지압 마사지 볼 등 스트레스와 수면 장애 완화를 돕는 물품들이 가득합니다.
[현장 오디오] 선물 줘요? / 네, 대남 방송 때문에 힘드시잖아요. / 그 새끼들 때문에… 말도 말아요, 아주. 그건 뭐요? / 이건 마음이 불안하거나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바르는 거예요. 콧등이나 귀에.
소음 피해는 주민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마을과 대남 확성기 사이에 작은 산이 있어 비교적 소음이 덜하다는 상도1리에서도 30여 명의 주민이 모여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현장 오디오] 그냥 신경이 저절로 확 올라와요, 마음이. 짜증이 나고 아침부터 기분을 확 잡쳐버려요. 요즘엔 노인정에 일부러 사람들 만나려고 와요. 이러다가 치매라도 걸릴까 싶어서. / 앞집에 장 선생은 전혀 못 듣는대요. 아휴 차라리 저렇게 귀먹은 사람이 편하겠다 싶어.

“아이들이 잘 수 있게 해주세요”
그날 저녁, 당산리의 한 가정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 손자손녀까지, 3대가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안미희 씨는 당산리 이장 안효철 씨의 딸입니다.
[안미희 씨] 애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그래서 간절한 마음 하나 갖고 갔어요.
[안미희 씨(국정감사장)] 진짜 싹싹 빌게요, 정말! 저희 애들이 오늘도…. / 참고인은 자리로 돌아가셔서…
강화읍 내 아파트에 살던 미희 씨 가족은 2021년, 층간소음을 피해 아버지 집 앞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7월 말,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자녀를 둔 그의 평화롭던 일상이 북한의 소음 공격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안미희 씨] 원래는 애들이 9시 정도에 자서 아침 6시 50분까지 자는데, 지금은 9시에 잔다고 해도 저 방송 소리 들으면 계속 설치는 거죠. 어제도 새벽 3시까지 엄청 크게 하더라고요. 자는 게 아니죠, 선잠 자는 거죠. 몇 시간을 딱 잔다고 말을 못 해요.
[기자] 애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나요?
[안미희 씨] ‘북한 또 시작이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이제 5개월 돼가니까.
아이들은 전날에도 아파서 학교를 못 갔습니다.
[안미희 씨] 지금도 두 애가 번갈아 가면서 편도염 생기고 구내염 생기고. 잠을 잘 못자니까 목이 계속 피곤한 상태니까 계속 붓는 거죠.
멀찍이 앉아 있던 미희 씨의 어머니가 손주 얘기가 나오자,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줍니다.
[김옥순 씨] 지금 입이 이 상태에요. 애들이 잠을 못 자고 그러니까 입이 이렇게 돼. 손주하고 손녀가 구내염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아.
이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집니다.
[안미희 씨] 제일 좋은 건 (대북) 방송을 끄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서로를 위해서 우리 쪽에서 먼저 방송을 꺼달라고. 근데 안 된다고 하니까. 감정싸움 하는거죠.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중단됐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올해 한국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살포한 데 대해 북한이 오물 풍선으로 대응하며 다시 시작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오물 풍선에 대한 맞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도 이에 맞서 확성기를 가동한 겁니다.
주민들은 “방음벽과 심리상담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안효철 씨] 행안부 실무 과장들, 국방부 실무과장들, 인천시 강화군청 안전과장들 다 나왔을 때 우리 주민들의 소원은 ‘대북 방송하지 말아라’였어요. 근데 한 일주일 후에 국방부에서 답변이 온 건 ‘안된다. 우리나라가 북한에 지는 것 같아서 못 끈다’는 거였어요.

DMZ 주민들 “이런 피난은 처음이야”
북한의 소음 공해를 견디지 못해 한 달 넘게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과 4백 미터 거리에 사는 DMZ 비무장지대 내 대성동 마을 주민들입니다.
[현장오디오] 과장님 안녕하세요. 차에 짐이 많아가지고.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주차장에 차 한 대가 들어옵니다.
오늘은 대성동 마을 주민 4명이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경기도청이 지원하는 이 숙소는 주로 학생들이 머무는 교육용 숙박시설로 한 방에 책상과 침대가 각각 2개씩 있습니다.
[주민들] 이제는 동현이 아줌마 여기만 오면 머리가 안 아프대. 집에만 가면 아프고. 여기 오면 서로 여럿이서 얘기 주고받고 위안할 수 있잖아. 텔레비전도 보니까 마음이 괜찮아.
매일 밤 이곳에서 자고 아침에 대성동에 돌아가는 생활도 벌써 1달 반.
[주민들] 여기에 한 달 사니까 안약도 있고, 다른 약들도 가져 다니고. 약이 최고 많지요. 이건 얼굴에 바르는 콜라겐, 이건 유산균 먹는 거. 집에 살림이 뚝 떨어져 나온 거야, 여기서 일상생활을 하려고. 얼음주머니. 홧병이 나서 얼음주머니가 있어야 돼.
지금도 소음으로 인한 홧병으로 얼음주머니를 가슴에 갖다 대야 진정이 됩니다.
[주민들] 우리 집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예요. 이건 양호한 거예요. 귀신 소리가 나오면 무서워요. 핸드폰으로는 그대로 안 전해져요.
[주민] 귀마개를 하도 하니까 진물이 나서요, 이비인후과 다니면서 치료를 하고.
소음 없이 잠을 청할 곳이 있어 다행이지만, 멀쩡한 집을 두고 언제까지 숙소 생활을 해야 할까요?
[유모씨] 전쟁 아닌 전쟁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낮에는 가서 농사꾼이 농사를 지어야 되잖아. 그래서 낮에는 (대성동에) 갔다가 다시 왔다가 자고 또 아침에 가서 일해야 되니까 몸이 아프긴 아프더라고요.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주민] (자식들은) 나오라고 그러지. 그런데 거기가 우리 생업인데 버리고 나올 수는 없고.

50년, 70년째 DMZ 내에 살며 납북 사건에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일까지, 다양한 일을 봐왔지만, 이런 지옥은 처음이라고 말합니다.
[주민들] 다 같이 울부짖었어요. 살려달라고.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고. 사람 사는 게 아니라 지옥이잖아요. 51년을 살고 칠십몇 년 살았어도 이런 건 처음이에요. 웬만한 (대남방송은) 듣고 넘겼어요. 근데 저런 소리만 연구하고 있나. 저것들은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고문하려고 저런 소리를.
대북 스피커도 고역이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듭니다.
[주민들] 양쪽 방송이 떠드니까. 집에서 나와 있으면 얘네 거 들려, 우리 거 들려. 아주 난리예요. 우리 건 듣기라도 좋은데 이제 많이 하니까 그것도 싫어졌어. 같이 트는데 뭐가 듣기 좋아.
대성동 주민들은 기자를 만난 내내 앞다퉈 하소연을 쏟아냈습니다.
[주민들] 서로 안 하고 안 보내면 되는데 그게 또 정치상 아니라잖아. 정부에서도 모른다잖아, 이제 언제 끝날 일일지.
기자가 접경지역에 머문 2박 3일 동안, 철조망 너머 북녘땅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은 계속됐습니다.
잠시 방송이 중단될 때면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 하지만 언제 다시 확성기가 켜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공기 중에 맴돌았습니다.
언제쯤 이 소음 전쟁이 멈출 수 있을까요?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