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김정은 강경 발언, 미 대선 겨냥 메시지”
2024.10.04
앵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에 대응한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강경 발언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메시지라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일 서부지구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과 미국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며 강경 메시지를 발신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이례적으로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고 ‘괴뢰’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 보유국’, ‘핵 강국’이라는 주장과 함께 핵 포기 불가 의사를 거듭 밝히고, 한미가 북한에 무력을 쓸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총비서가 윤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공격한 것은 지난 2022년 7월 이른바 전승절 연설 이후 2년여 만입니다.
이 같은 김 총비서의 강경 발언은 “핵을 사용할 경우 그날이 바로 정권 종말이 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 정부의 발언을 구실로 한국과 미국,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보유국으로서 지위가 ‘불가역적’, 즉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북한 측의 표현에 주목하면서 “미국 대선, 멀리는 차기 행정부에 전하려는 차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발언에) 대남 억지력 측면도 있지만 한국을 인질로 삼아 미국에 대한 억지력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사실상 불가역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대북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작아진 상황에 미국 차기 행정부에 대북 접근 태도를 바꿀 것을 촉구하는 차원이라며 이같이 분석했습니다.
또 한미 동맹 강화와 강경해지고 있는 한국의 대북 태세로부터 느끼는 일종의 우려도 해당 발언에 반영돼 있다며, 윤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한 것은 한반도 긴장 조성 책임을 떠넘기려는 일종의 심리전이라는 평가도 내놓았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한국 군의 국군의 날 대규모 시가 행진과 윤 대통령 기념사 내용을 감안하면 북한 측 대응 수위가 높았다고 보진 않는다며, 이는 미 대선을 앞둔 메시지 관리 차원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발언 자체의 수위는 높았지만 위력적인 국군의 날 무력시위에 대한 반응으로는 그렇게 수위가 높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대규모로 군사 행동을 한 것은 아니거든요.
조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러시아·중국과의 관계에서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 관련 내용이 삭제된 현 상황이 핵포기 대신 군축을 원하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대미 고강도 도발을 자제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북한이 한국의 국군의 날 메시지에 민감하고 다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김여정 부부장과 김 총비서가 잇달아 한국을 비난하고 나선 것을 언급하며, 이는 윤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아마도 김정은의 지시로 김여정이 먼저 10월 1일 행사에 대한 비난을 하고, 김정은이 그에 대해 또 한 번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반응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3일 자신의 이름으로 담화를 내고 한국의 국군의 날 행사를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 측이 한국과 미국을 구분해 대응하는 양상이 보인다며, 한국에 대해선 핵무기 언급을 포함한 강경 발언과 무력 도발을 이어가는 반면 미국에는 장거리미사일 도발은 자제한 채 핵시설 공개 등을 통한 간접적인 메시지 발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미 대선 전에 고강도 도발로 비난과 압박을 초래하는 것 보다는 선거 이후를 고려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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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방부는 이날 ‘김정은·김여정의 국군의 날 행사 관련 비난에 대한 입장’을 내고, 북한이 윤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태”라고 강조했습니다.
국방부는 북측이 국군의 날 행사를 두고 무기체계와 전략사령부를 일일이 거론하며 비난한 것은 한국 군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태세로 인한 초조함과 불안감의 발로라며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이어 “주민들을 철저히 속여온 불량 정권으로서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한국 군의 위용을 북한 주민들이 보게 될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며 강박을 느낀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고, 핵 도발 즉시 북한 정권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며 “궁핍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야말로 정권 종말의 길임을 깨닫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