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TV, 손흥민 빼고 프리미어 리그 중계
2025.02.11
앵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가 해외 축구 리그를 방송하면서도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 한국 선수들이 뛰는 팀의 경기는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이 스포츠 중계 편성에도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선수 활약하는 EPL·UCL 경기 배제
2024-2025년 영국의 축구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지난달 13일부터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계되는 경기 수는 적고, 수개월이 지난 뒤 방영되며, 시즌이 끝나도 최종 우승팀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분석했습니다.
38노스는 1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스포츠 중계는 비교적 정치적 선전이 덜 개입된 영역이지만, 여전히 정치적 요소가 작용한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북한의 국제 스포츠 중계에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사례는 여러 차례 포착됐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탈락할 때 까지 월드컵 경기를 방송하지 않았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괴뢰’라고 표기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조선중앙TV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유럽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방영하면서도 한국 선수들이 소속된 팀의 경기는 배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8노스의 분석 결과, 조선중앙TV는 2023-2024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총 360경기 중 단 21경기만 방송했으며, 그 중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스),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김지수(브렌트포드) 등 한국 선수가 활약하는 팀의 경기는 아예 중계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한국 선수 이강인이 소속된 파리 생제르맹(PSG) 경기는 16강전과 8강전은 배제한 채 패배를 기록한 준결승 경기만 한 차례 방송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선수 응원하는 것 두려워 해”
지난 2014년 탈북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은 청소년 시절 조선중앙TV에서 일요일에 방영하던 이탈리아 세리에 A리그와 스페인(에스빠냐) 라리가 리그를 즐겨봤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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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그는 “당시 유럽리그에서 활동하던 한국의 박지성, 안정환, 설기현 등 선수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이후 중국 유학을 나와서야 이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현승 위원] 지금 한국의 손흥민 선수나 다른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북한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응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북한 정권이 매우 우려하는 거죠. 또 한국이 북한보다 더 잘한다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면 안돼요. 그런게 북한 정권을 약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북한 정권은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주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높일 것을 우려해, 해외 리그 중계에서도 이를 차단하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습니다.
최대 1년 후 방송…지연 송출 이유는?
38노스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중앙TV의 해외 축구 중계는 평균 4개월가량 지연됩니다.
지난해 8월 16일 개최된 2024-2025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이 올해 1월 13일에 방영됐고, 경기에 따라 최대 321일이 지나서야 방송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연 방송이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북한 여자 U-20 축구 대표팀이 FIFA U-20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경기 종료 후 13시간만에 방영하는 등 신속한 중계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38노스는 이같은 지연 송출은 중계권 보유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아시아방송연맹(ABU)을 통해 무료 중계권을 확보할 수 있는 FIFA 월드컵과 달리, 북한은 공식적으로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의 유료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를 공동 수행한 마틴 윌리엄스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RFA에 “조선중앙TV에서 해외 축구경기가 꾸준히 방영되는 점이 흥미로워 연구를 시작했다”면서 이번 연구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약 1-2주일이 소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