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해! 엎드려!” 북러 소통용 책자 공개
2024.10.29
앵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장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러시아 군인이 북한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과 소책자가 공개됐습니다. 전문가들은 기본 어휘 학습만으로 전장에서 효과적인 소통이 가능할 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8일 한 친우크라이나 단체의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 텔레그램에 올라온 영상.
러시아군으로 추정되는 한 병사가 한글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습니다.
영상을 촬영 중인 사람이 “공부는 잘 돼가?”라고 묻자 욕설을 뱉으며 대답합니다.
[영상 내 오디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하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 정말 엉망이야.
이 군인이 들고있는 종이에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등 기본 한국어 회화와 함께 영어로 적힌 발음 및 러시아어 해석이 스무개 이상 적혀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왔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습니다’, ‘통역사가 있습니까?’와 같은 문장들도 보입니다.
러시아 병사들이 북한 병사들과의 소통을 위해 공부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영상을 올린 채널 관리자(Exilenova+)는 29일 RFA에 “영상의 원 출처는 러시아군의 텔래그램 채널이며, 정보 입수를 위한 수단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28일 한 엑스 계정에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작성된 군사용어 책자가 올라왔습니다.
책자 앞면에는 러시아군 표식과 함께 러시아어로 ‘지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아래에는 ‘기본 한국어 표현’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또 표지에는 러시아 국기와 북한 인공기가 나란히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알아야 할 것’이라는 문장과 함께 ‘병사와 장교들은 전장에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다음 한국어 문구를 익혀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책자 한쪽 면에는 러시아어로, 그 옆에는 한국어를 나란히 배치돼 있으며, ‘엎드려! 공격해! 무기를 내려놔! 계급과 직책은 뭐야? 너는 어느 부대에서 왔어?’ 등의 전장에서 사용할 표현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자는 병사들이 전장에서 바로 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소책자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해당 영상과 사진의 진위 여부를 독립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민군 제4군단 포병 정찰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 이현승 씨는 북한 병사들도 간단한 러시아어 명령어를 익힌다고 밝혔습니다.
[이현승 씨] 북한 병사들이 간단한 영어나 러시아어가 각 부대에 배치가 돼 있어요. ‘서라’, ‘사격’, 중지’ 이런 간단한 명령어들 있잖아요. 그래서 아마 그런 언어를 숙지했을 겁니다. 물론 소통을 하려면 원활하지 않아 장애를 겪겠지만, 부대 장교들끼리 통역을 하고 일반 병사들은 러시아 병사들과 교류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처럼 기초적인 언어 습득이 실제 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의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국정원은 지난 23일 “러시아군이 한국어 통역 자원을 대규모로 선발하고 있는 동향이 확인되고 있다”고 발표했고, 29일에는 북한군에 필수적인 전투 용어를 교육하고 있지만 의사소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보인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여당 국민의힘 소속 이성권 국회 정보위 간사의 말입니다.
[이성권 의원] (러시아) 군사용어 100여 개를 교육하고 있지만 북한군이 어려워한다는 후문이 있는 상태고요. 그래서 소통 문제 해결이 불투명하다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참모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이날 RFA에 “통역사를 급히 고용하더라도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효과적인 전투 지휘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 언어가 다른 두 국가의 군대가 군대 내 통역병을 통해 효율적인 전투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0년간 양국 부대에 통역사와 번역가를 상시 배치해 정기적인 훈련을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북한은 지금까지 연합 훈련을 한 적이 없고, 양국이 상호운용 훈련을 진행했다는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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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러시아에서 한글이 적힌 문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미국 방송사 CNN은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를 통해 입수한 한글 설문지를 입수해 보도했는데, 설문지에는 한글로 “모자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러시아어로도 같은 내용의 안내가 적혀있습니다.
러시아가 파병된 북한 군인들에게 군복과 군화 등 보급품을 지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문서로 추정됩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