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출신 탈북민들 “동무들 의미없이 총알받이 되지 말라”
2024.10.25
앵커: 북한 인민군에서 복무했던 탈북민 청년들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에 남 일 같지 않다면서 이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되지 않고 부디 무사하길 기원했습니다. 박재우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이현승 씨] 동지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전쟁은 정의의 전쟁도 조국보위도 아닙니다. 동지들 자신과 부모·형제들을 위한 전쟁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김정은 한 사람의 사리사욕과 독재권력을 위한 전쟁 범죄일 뿐입니다.
지난 22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의 증거들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자 탈북민 이현승 씨가 사회관계망 서비스 X에 올린 영상입니다.
2000년대 인민군 제4군단 포병 정찰대대와 총참모부 직속 15호 격술연구소에서 근무한 그는 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와 통화에서 러시아군에게 보급품을 받는 어린 북한군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껴 이 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정보보안센터(SPRAVDI)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보급을 받는 모습이라며 짧은 영상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뒤이어 한국과 미국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확인했고, 북한과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다가 25일 사실상 시인했습니다.
<관련기사>
이처럼 한 때 인민군에서 근무했던 탈북 청년들에게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그들의 운명도 파병 군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9년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한국에 귀순한 인민군 공군 출신 류성현 씨도 이날 RFA와 통화에서 탈북하지 못하고 북한에 남아있었다면, 자신도 거부감없이 파병에 따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류성현 씨] 북한에서 제가 만약에 살았다면 저도 오히려 파병을 가기를 원했을 수도 있어요. 가라고 하면 ‘전혀 안 가겠다’, ‘어쩌겠다’ 이런 반문을 하지 않고 저는 갔을 것 같아요, (파병 군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열심히 해서 군대 내부에서 승진할 기회로도 생각할 수 있고요.
목숨걸고 러시아간 북한군 월급은? /RFA 영상
김용현 한국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 당국이청년들을 활용해 불법 침략 전쟁의 ‘총알받이’로 팔아넘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승 씨도 전투가 벌어지면 북한군에서 90%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보도를 보고 헛된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현승 씨] 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옳은 선택을 하게끔 만들어야죠. 만약에 그들에게 전투가 벌어지면 정말로 90% 사상자가 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잖아요.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끌려온 전쟁인데….
성현 씨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스럽다면서, 파병된 군인들이 어서 빨리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류성현 씨] 북한 군인들은 지금 자기 본인들의 목숨이 얼마큼 소중한지 있는지 그걸 모르거든요. 앞으로 더 어떤 나은 삶을 살아갈 거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가치를 잘 몰라요. 그 친구들이 자유를 맛보고 알면 자기의 생명이 김정은에 버금가는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 인민군의 처우는 상당히 열악하다고 증언하면서, 인민군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파병에 대한 거부감이 적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에 차출된 용병 병사들은 파병 대가로는 1인당 월 2000달러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식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북한군에 비해 파병 군인들이 파병지에서 오히려 더 잘 먹을 수 있을 거란 예상도 나옵니다.
현승 씨는 20년 전, 성현 씨는 5년 전까지 인민군에 복무했었지만, 북한 내부에서의 인민군의 월급은 여전히 1달러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러시아로부터 2000달러를 받는다고 해도 북한군 병사들은 다른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처럼 수입의 대부분을 정권에 상납할 공산이 큽니다.
이를 인지한 우크라이나 당국은 ‘투항 핫라인’을 통해 영상을 만들고, 투항한다면 하루 세 끼 고기반찬이 나오고 햇볕이 드는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지낼 수 있다며 항복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다만 북한 당국으로부터 통제를 받고 교육 받는 이들이 투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성현 씨는 북한의 선전·선동에만 노출되고 있는 파병군인들이 항복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류성현 씨] 북한 군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연합, 나토라는 단체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왜 힘도 없는 (우크라이나 같은) 국가가 회유를 해?’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대북방송을 통해 좀 더 많은 정보를 퍼트려야 한다는게 현승 씨의 주장입니다.
[이현승 씨] 내가 만약에 그 전장에 있었다면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일 저한테 와닿을까 이렇게 생각했을 때 군에서 같이 복무를 했었고, 북한 군인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전 북한 병사들이나 군관들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면 파병 군인들에게도 진심으로 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이런 영상을 만들게 됐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 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