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부족한 생필품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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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부족한 생필품 평양의 류원 신발공장 모습.
/AP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최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확대회의에서 인민 소비품 생산을 높이는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오늘은 북한의 소비재 생산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문성희: 네, 그렇게 하지요. 인민 소비품이란 생활 필수품을 의미하는 북한말입니다. 인민 소비품 생산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계속 강조돼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생필품 생산이 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문성희: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것은 공장 설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북한 공장에도 새로운 설비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공장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지만 1996년이나 2003년에 방문한 공장들에 비해 좋은 설비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외국에서 사 온 설비들이었어요.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공장들이 외국 설비를 들여 놓았던가요?

문성희: 글쎄요. 평양 양말공장 같으면 이탈리아에서 설비를 수입했고 대동강 유리공장도 이탈리아제 설비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2010년대에 북한을 오갈 때도 유리창이 굉장히 두껍다고 할까, 옛날식 유리창이라고 할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얇은 유리를 쓰지 않습니까? 그런 유리창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대동강 유리공장에 가니까 거기서 생산되는 유리창을 보여주었는데 질이 높았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결국 외국에서 들여온 설비를 이용해 생필품을 생산한다는 말인가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평양 양말공장에서 생산된 스타킹 등은 정말 질이 좋았어요. 그거야 당연하지요. 설비가 좋으면 그 설비를 배운대로 가동시키면 되는 것이니까.

<기자> 그런데 이 시점에 북한 당국이 새삼스레 생필품 생산 증대를 강조한 건 어째서라고 보시는가요?

문성희: 그거야 시민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경제의 사명은 인민들의 물질적 수요을 보장하는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 같은데, 이것은 결국 북한 당국이 인민들의 물질적 수요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기자> 물질적 수요를 보장하지 못하면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겠지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인민 소비품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싼 가격으로 공급을 받거나 아니면 좀 비싸도 시장에서 사는 방법이지요. 2011년에 제가 평양 제일백화점에서 목격한 장면이 있어요. 신발코너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생필품은 공급표가 없으면 아무리 백화점에 가더라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줄을 지어 서 있었던 사람들은 공급표를 가지고 신발을 공급받으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계획대로 생산이 되면 좋지만 생산 안 되면 공급표를 갖고 있어도 공급을 못 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래서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는 것이겠지요.

<기자> 그러니까 당시에 공급표가 있지만 신발을 못 구하게 될까봐 백화점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혹시라도 신발이 모자랄까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기자> 그러니까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이 생필품 생산을 높여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문성희: 네, 물론 장마당에서 사는 방법도 있겠지만 장마당에 진열되는 상품은 중국제를 비롯한 외국제품이 많습니다. 국산품은 거의 없어요. 지금처럼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국경봉쇄를 계속한다면 장마당에서도 상품이 부족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북한에서 생필품 국산화는 매우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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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를 통해 들여다 본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의 내부 전경. 독일에서 수입한 설비로 과일을 원료로 한 음료, 술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2011년) /문성희 제공

<기자> 그런데 이번 정치국회의에서는 생필품 생산 증대에 관한 대책이 나왔던가요?

문성희: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경공업 공장들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보장하는 대책을 선행시켜야 한다고 강조되었고 이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김정은 총비서가 취했다고 하네요.

<기자> 획기적인 조치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말하는 건가요?

문성희: 아마 자금 보장, 그리고 경공업 공장에 우선적으로 원료와 자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공업 공장이 있어서 거기에 최신 설비가 마련되고 있다고 해도 원료와 자재가 없으면 물건 자체를 만들 수가 없지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원료와 자재를) 외국에서 사오는 것, 또 하나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자재와 원료를 우선적으로 경공업 공장에 돌리는 것이겠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 군수물자에 돌리고 있었던 원료와 자재를 경공업 공장에 돌리게 된다, 뭐 그런 조치가 취해졌을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기자> 그런데 생필품의 질 문제는 보장이 될까요?

문성희: 김정일 정권 시기에도 기술혁신이 강조되고 생필품 자체의 질은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 정권 시기에는 무엇이든 자력갱생으로 스스로 만들자는 그런 발상이었고 그 당시는 수입품이 들어온다고 해도 동유럽이나 구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나라들의 상품이었기때문에 질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북한에서 받은 선물이라며 명알(명태의 알)을 집에 가져오셨는데, 맛은 정말 좋았지만 곧 썩어버렸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상품을 보존하는 기술이 없었다는 말씀이네요?

문성희: 네 그런 측면은 있었다고 봅니다. 통조림인데도 깡통을 열어보니까 내용물이 썩고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최근들어 북한에서 생필품의 질이 향상됐나요?

문성희: 네, 김정일 정권 시기부터 생필품 질은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양말도 그렇고. 북한에 체류할 때 옷가지를 사서 입고 있었는데 질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발, 그리고 운동화 같은 것은 아직 외국산이 좋고 종이 같은 것도 질이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많이 노력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대동강 과수종합공장에서 과일을 원료로 한 쥬스나 술, 샴푸 등을 팔고 있는데 잘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자> 외국에 수출할 만큼 질이 좋은 제품도 있었다면서요?

문성희: 상품에 따라서 다르다고는 생각하지만 물론 아직 수출품으로는 안 될 것도 있지만 영광 가구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식기나 가구 같은 것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열 공간이 공장 내에 있어서 거기서 직접 상품을 볼 수 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대량으로 생산하는가 하는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겠네요.

문성희: 네, 바로 그렇지요. 그러니까 원료와 자재를 부족함이 없이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돼야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싼 값으로 공급할 수 있겠지요.

<기자> 북한에 계실 때 주요 생필품 중 무엇이 가장 뒤떨어진 상품이라고 생각하셨나요?

문성희: 제가 모든 생필품을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답은 못드립니다. 그런데 과거에 북한에 체류하면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 것은 종이의 질이었습니다. 노동신문도 외국에 나가거나 호텔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종이를 쓰고 있는데 일반 사람들이 보거나 하는 것은 종이 질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평양신문 등 지방신문은 아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신문은 없어요. 그리고 화장지의 질도 좋지 못합니다. 그것도 공급이었기 때문에 모자라면 다른 수단으로 화장지 대용품을 찾을 수 밖에 없어요. 최근에는 좀 좋아졌을 지 모르지만 역시 종이 문제 해결이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정작 북한 주민들이 보는 신문의 종이 질은 좋지 않았다는 말씀인데, 상태가 어느 정도였나요?

문성희:표면이 거친 갱지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색깔도 순수 하얀색이 아니라 살색이었고 종이도 두터웠습니다. 공책같은 것도 국산품은 그런 종이를 쓰고 있어서 평양1백화점 같으면 외국제 공책이 팔리고 있었는데 값은 10배 정도였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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