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또 ‘고난’ 속으로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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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또 ‘고난’ 속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8일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 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문성희:  네, 지난 4 8일에 열린 당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한 폐회사에서 언급이 되었다는 것은 청취자 여러분도 이제 잘 아시겠지요. 정확히는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이라고 말했지요. 하여튼 고난의 행군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계속된 경제제재에다 코로나 19를 막기 위한 국경봉쇄로 북한이 그 동안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시점에 김 총비서가 고난의 행군을 언급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문성희: 김 총비서의 말을 빌린다면 인민들의 고생을 하나라도 덜어주고 인민들에게 최대한의 물질 문화적 복리를 안겨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운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자> 경제적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문성희: 김 총비서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당세포비서대회의 결론에서 김 총비서가 당중앙은 앞으로의 5년을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고 인민들의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효과적인 5년으로, 강산이 또 한번 변하고 비약의 5년으로 만들자고 한다고 했던 것을 봐도 어느 의미에서는 할 수 없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기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경제 부흥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럼 1990년대 후반기의 고난의 행군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나요?

문성희: 당연히 그렇다고 봅니다.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은 그야말로 북한이 원한 것이 아니라 주객관적 악조건이 모두 닥쳐와서 할 수 없이 하게 된 측면이 있지요.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난 뒤에 북한은 3년간 국가적으로 상을 입었습니다.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이 총비서가 된 것이 199710월인데 그 때까지 국가 자체가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공급도 갑자기 없어지고 굶어 죽는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이 당시 해결 방도도 모른 체 갑자기 닥친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저는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주 이야기해왔지만 갑자기 식량 공급도 떨어지면 그것을 어떻게 구하면 좋겠는가 사람들이 많이 고민을 했지요. 그런 속에서 나름대로 장사를 하고 물물교환을 하고 불법 장마당도 많이 생겼지요. 저는 1996년에 평양특파원으로 있으면서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정도 북한에 체류하고 있었던데 그 당시가 마침 고난의 행군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피부로 느낀 어려움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을 해요. 저 같은 해외동포라도 물자의 부족을 느낄 때가 있었지요. 물건을 구하고 싶어도 물건이 없는 거에요. 그럴 땐 아무리 돈이 있어도 안 됩니다. 제가 그럴 정도니까 북한 보통 사람들의 형편이야 어떠했겠습니까?

<기자> 그런 이야기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직접 들으신 것이지요?

문성희:  , 운전기사나 가정주부 등 여러 사람들 한테서 들었어요. 흰 쌀 같은 것은 보기도 드물었고 기본은 옥수수 죽이었지만 그것마저 2끼니밖에 먹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저는 호텔에서 흰 쌀밥을 먹고 있었고 고기도 생선도 남새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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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수해지역을 취재한 당시 현장에서 제공받은 수해피해상황을 적은 자료들. ‘풍수해자료, 황해남도 봉천군 풍수해 지휘부’라고 씌어진 표지가 붙어있었다. /사진: 문성희

 

<기자> 하지만 수백 만 명이 굶어죽어 나가는데 핵과 미사일만 틀어쥐고 있는 상황, 사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쉽게 용납하기 힘들었을 듯한데요. 당시 북한에서 만나본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문성희: 그 당시 북한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개발을 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고 생각을 합니다.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도 저한테는 본심을 트러내지 않을 것인데 아마도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고생하더  할 수 없다고 했겠지요. 물론 고난의 행군시기 수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배고픈 속에서 복구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자> 김정은 총비서는 핵 개발이 완성됐다고 이제는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한 걸로 기억하는 청취자들이 많을 텐데요. 여전히 핵과 미사일이 주민들 먹고사는 문제보다 먼저라면 주민들의 반감이나 실망감도 크지 않을까요?

문성희:  물론 지금 당장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을 하는 징후는 안 보입니다.  ICBM발사실험은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약속은 지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열병식을 보면 계속 새로운 무기가 공개되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미국을 계속 견제를 하고 있는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사일과 핵개발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다만 지금은 인민생활 향상이 제일 목표이기때문에 그쪽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지금 상황이 전후 최악이었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와 같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제가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 경제제재, 코로나19, 지난해 태풍피해의 ‘3중고에 시달리는 북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당시의 고난의 행군시기와 맞먹는 상황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겠지요.

<기자> 어떤 배경인가요?

문성희:  하나는 그 당시와는 달리 정권 자체가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김 주석이 사망한 뒤 3년간의 국상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국가가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난의 행군에 들어간다고 선언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당세포비서대회라는 공식마당에서 최고 영도자가 선언을 한 것입니다

<기자> 어려움이 닥칠테니 미리 준비하자, 뭐 이런 의미란 말이군요.

문성희: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시 1990년대 말 처럼 어려운 상황이 오는가해서 걱정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상황이 왔을 땐 자기들의 힘으로 이겨나가야 하겠구나, 그런 인식을 다시 갖게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당세포비서대회에서는 10대과업이 발표되었는데 그것을 자세히 보니까 지금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잘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문성희: 당세포비서들이 지켜야 할 과업이 10가지 지적되었던데 거기엔 청소년들의 옷차림 문제 등이 지적되어있고, 나쁜 길로 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어요. 그리고 비사회주의적인 현상에 대해선 철저히 투쟁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특히 젊은 사람들속에서 비사회주의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가 어려운데 그런 비사회주의적인 현상을 그대로 두고서는 안 된다고 인민들을 각성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기자> 경제가 어렵고 국가는 공급도 못 해줘서 각자 살아갈 방도를 찾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면 안 된다며 사상통제만 강조하고 나선다, 언뜻 바도 제대로 된 처방은 아닌 듯한데요.

문성희: , 저도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북한은 어려울 때일수록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고 저는 보고있어요. 사상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어떻게나 자본주의의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지요. 최근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과거의 구호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경계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가 하는 불만이 나오지 않습니까?

문성희: 당연히 그런 측면은 있겠지요. 2012년에 북한 갔을 때도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되는가해서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1990년대와는 달리 대부분 사람들이 시장경제적인 사고방식에도 익숙이 되었고, 지금은 국가가 공급을 안 해준다고 했을 때 아무것도 방도가 없다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착실하게 자기 나름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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