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① 동남아 제3국서 시작한 새 여정

서울 – 노정민, 천소람 nohj@rfa.org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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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① 동남아 제3국서 시작한 새 여정 2019년 10월,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시아 제3국으로 밀입국했던 13명의 탈북민들(왼쪽). RFA 기자가 강을 건넌 밀입국한 탈북민들과 처음 만났던 장소 (오른쪽)
/RFA Photo

앵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13명의 탈북민들이 동남아시아 제3국에 밀입국했던 2019년 10월. 당시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이들의 밀입국 순간부터 자수의 과정까지 현지에서 동행 취재를 한 바 있는데요. 이후 경찰서 유치장과 이민국 수용소를 거친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에 정착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RFA는 당시 동행했던 두 명의 탈북민을 2년 만에 다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코로나19의 대유행 가운데 외로움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의 정착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13명의 탈북민들이 경찰서에 자수하러 떠난 이후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과정을 노정민 기자가 뒤따라가 봤습니다.  

2019년 10월 첫 만남

[탈북 구출단체] 여보세요. 강 넘었습니까?

[탈북 구출단체] 네. 확인했어요. 문자 받았어요. 그렇게 멀진 않아요.

2019년 10월 18일 늦은 밤. 13명의 탈북민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시아의 제3국으로 밀입국했습니다. (당시 기사 링크) 

북한을 떠난 뒤 자유를 찾아 나선 6천km의 여정. 국경만 4개를 통과하는 동안 버스와 승용차 등 13차례의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이날 밤에만 산 8곳을 넘은 직후였습니다.

[탈북 구출단체] (강을) 넘었대요.

[탈북 구출단체] 환하게 불빛이 비칩니까?

[탈북민: 김서영 씨(가명)] 네. 보입니다.

[탈북 구출단체] 우리가 흰 차고, 그쪽에 와서 깜빡깜빡하시오.

[탈북민: 김서영 씨 (가명)] 2분이면 나갑니다. 2분.

작은 쪽배에 몸을 의지한 채 물살을 갈랐던 13명의 탈북민들. 드넓은 국경 지역에서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약속된 불빛 하나만 믿고 강변을 헤매던 끝에 한국의 인권단체 ‘나우(NAUH)’의 구출팀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탈북 구출단체] 어, 찾았다! 아이고~ 고생 많았습니다.

[탈북민들] 안녕하세요.

[탈북 구출단체] 저랑 통화했던 분 누구예요?

불안과 긴장의 시간을 보낸 탈북민들은 당시 구출팀을 만난 순간 비로소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상처투성이인 다리, 거의 끊어져 버린 가방끈, 해어진 신발 등은 탈북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13명의 탈북민들 가운데에는 20대 여성 김서영 씨(북한에 있는 가족의 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와 이수진 씨(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도 함께였습니다. 김 씨는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잊지 못합니다.

[김서영 씨(가명)] 몸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한 번은 1박 2일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는데, 어느 순간에 붙잡혀 북송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밥맛도 없고,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또 산을 넘을 때는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우리를 데려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따라가는 거예요. 산을 다 넘은 뒤 내가 넘은 산이 몇 개인지 세어봤더니 8개를 넘은 거예요.

1박 2일 동안 안전가옥에 머문 탈북민들은 이튿날 밀입국 자수를 위해 경찰서행을 서둘렀습니다. 김 씨 역시 그토록 그리던 대한민국에 하루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김서영 씨 (가명)] 앞으로 한국에 가서 열심히 살 겁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에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무섭다거나 불안함은 없어요. 이제 앞으로 남은 기간 잘 지내다가 한국에 도착해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고마움과 아쉬움의 눈물을 뒤로하고 탈북민들은 곧장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 약 4천km의 새로운 여정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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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제3국에 밀입국한 뒤 자수를 위해 경찰서로 향하기 전 작별 인사를 하는 이수진 씨(왼쪽)와 경찰서로 향하는 13명의 탈북민들(오른쪽). / RFA photo

유치장과 이민국 수용소

[현장음] 나 사과 딱 하나 먹었어.

밀입국을 자수한 13명의 탈북민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됐습니다. 더운 날씨에 좁은 공간, 분리되지 않은 화장실,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 등으로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당시 이 씨는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이수진 씨(가명)] 하루가 너무 늦게 갔고, 저는 그 안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가 한순간에 닥친 일이라 많이 울었고, 그냥 빨리 한국에 오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책을 보지 않으면 그냥 잤어요. 계속 감방에 있으니까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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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탈북민들이 일주일간 지냈던 경찰서 유치장의 내부 모습. / RFA photo

이들은 일주일 뒤 추방 재판을 받고 이민국 수용소로 이송됐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일주일간 작은 감옥에 있었어요. 7일째 되는 날에 재판을 받고, 큰 이민국 수용소로 옮겨진 거죠. 저는 그곳에서 약 25일간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빨리 나갈 수 있는데,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록 감옥이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추방 재판과 조사, 면담 등을 거친 탈북민들은 동남아시아 제3국에 밀입국한 지 한 달 만인 2019년 11월 말, 그토록 바라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됩니다.

김 씨와 이 씨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의 안도감, 하늘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첫인상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수진 씨(가명)] (한국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너무 설렜고, 정말 가는 건지, 지금 꿈꾸고 있는 건지 너무 머리가 아팠고, 감방을 벗어날 때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공항에서도 잡힌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니까 실감이 났어요. 한국에 도착하니까 빨간 불빛이 가장 먼저 보였어요. 새벽에 도착해서 어두웠는데, 빨간 불빛이 너무 많이 보였거든요. 그때는 몰랐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서 보니까 교회 십자가 불빛이었어요.

[김서영 씨(가명)] 여기가 한국이구나. 그 땅을 보는 순간 마음이 놓이는 거 있죠. 마음이 너무 편안한 거예요. 우리가 바라던 곳이잖아요. 이 땅에 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어요. 모든 고생을 다 마쳤다고 생각하니 정말 반가웠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한국에 너무 오고 싶었고, 끝내 도착했으니까 모든 것이 신기했던 거죠.

반가운 소식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탈북민들과 헤어지고 6개월이 지난 2020년 4월,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저희 RFA에 전해졌습니다.

당시 탈북민들 중 일부가 다시 만났고, 그 만남의 순간을 사진과 영상통화로 공유해준 겁니다. 눈에 띄게 달라진 외모와 함께 표정은 한층 더 밝아 보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탈북민들은 그동안 탈북민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친 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착 생활을 막 시작했습니다. 처음 가져보는 휴대전화와 자유로운 인터넷 검색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10대 탈북민 이성민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기초부터 다시 배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성민 씨(가명)] 하나원에 있을 때 우선 공부를 해서 꿈을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북한에서 공부할 수 없어서 기초가 없는데, 기초부터 잘 배워서 나중에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나원 퇴소와 함께 유행한 코로나비루스의 여파로 정착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지만, 이들은 한국에 오고자 했던 첫 마음과 목표를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견뎌냈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저는 한국에 정착할 때부터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됐으니까 처음부터 적응이 되다 보니 특별히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만 겪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수진 씨(가명)] 한국에 오면서 공부를 안 하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들었어요. 하나원에서도 선생님들이 꿈을 크게 갖고 공부하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공부만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종종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응원하던 중에 RFA는 이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헤어진 뒤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으로 이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환경에서 그동안 이들이 써 내려간 정착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긴박한 순간을 함께 했던 추억, 성공적인 정착을 응원했던 마음과 함께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지난 8월 말, 저희 RFA 취재진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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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재회를 앞둔 김서영 씨(가명) 집 앞. /RFA Photo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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