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묵인 관행 깨고 탈북민 지원 선교사 체포…“현지 북 노동자 통제 노림수”
2024.03.12
앵커: 러시아에서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해오던 한국인 선교사가 러시아 당국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데 대해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와 탈북민을 지원해온 활동가는 "의도적인 체포"라며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서의 활동도 위축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자민 앤더슨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16년부터 러시아 내 탈북민들과 북한 노동자들을 찾아 인도적 지원을 해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 겸 하나센터장.
그는 이달 말 계획해뒀던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일정을 재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러시아에서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하던 한국인 선교사 백씨가 러시아 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백씨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금된 후 추가 조사를 위해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구치소에 구금된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강 교수는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현지 선교사가 간첩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며 이례적인 일”이라며 우려했습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스리스크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주로 지원하며 탈북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많지만, 인도적 차원에서의 도움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강동완 교수: 사실 여기에서 (선교사들이) 지원하는 일들에 대해서 러시아가 그동안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활동을 하면서 발각될 경우, 러시아 법적인 규정으로 벌금이나 추방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렇게 간첩 혐의를 씌웠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강 교수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북한 노동자들과 탈북민들에게 생필품과 의약품, 겨울용 옷과 장갑 등을 전달했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이 심한 노동 강도와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한국으로 탈출하거나 건설 현장을 이탈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코로나19가 끝난 지금까지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해 동요가 심한 상태”라며 러시아 당국이 활동가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체포한 시기에 집중했습니다.
강동완 교수: 특히 최근에 북러 간 밀착이 굉장히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으로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현지에서 통제하고, 또 이들을 지원하는 한국 선교사들의 움직임과 활동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분명한 의도가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결국 북한 당국은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제하고자 했을 것이고, 그러한 요청을 러시아가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7월 개정된 반간첩법을 시행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간첩행위의 범위를 크게 넓혀 외국인의 간첩 행위도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고, 애매모호한 조항이 많아 중국 당국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한 영향으로 당시 중국을 방문하려던 선교사들이 계획을 포기하고 현지 교회 문을 닫기도 해 사실상 중국 내 탈북민 관련 활동이 불가능해졌다고 활동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 내 탈북민 지원과 연구 활동 역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강동완 교수: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하산 지역에서는 촬영을 하거나 또는 그곳에 간 이유로만으로도 러시아 국경에 보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간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러시아에서는 간첩 혐의를 받으면 보통 10년에서 20년 형이라는 굉장히 무거운 패널티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이미 북한 당국과 러시아는 이런 부분들을 노렸을 가능성이 굉장히 큰 부분이죠.
그는 특히 “북한이 앞으로 노동자들을 러시아로 계속 보내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 역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활동가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러한 움직임을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습니다.
한편 러시아에 건설 노동자로 파견됐다 탈출 후 지난 2008년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 폴 한 씨 역시 이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는 난민 심사 과정이 진행 중이던 2007년, 약 1년 반 동안 모스크바의 한 한인교회에서 숙식 지원을 받았습니다.
폴 한: 그 때 그 (한인교회의) 목사님도 한 10년 이상을 (지원 활동을) 하셨어요. 우리 있을 때도, 나 때문에 그랬겠죠. 내가 (북한 보위부로부터) 수배가 내려서 그 분 집에 숨어살 때도 러시아 경찰이 몇 번 쳐들어 왔어요. 그러다 그분이 먼저 추방당하셨어요.
한 씨는 “북한 당국이 탈북민과 노동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 알고 있다”며 북한과 러시아의 연계로 인해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한편 백씨의 체포 사실과 관련해 한국 외교부는 12일 “한러 양국이 외교 통로로 소통하고 있다”며 “현지 공관에선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