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예수’ 카폰 미 군종 신부 ‘가경자’ 선포

워싱턴-조진우 choj@rfa.org
2025.02.26
‘한국전 예수’ 카폰 미 군종 신부 ‘가경자’ 선포 에밀 카폰 신부(오른쪽)가 포로로 붙잡혔을 때 부상당한 병사를 부축하며 100km 이상 떨어진 포로수용소까지 걸어가는 모습.
/ U.S Army

앵커: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 신부로 참전해 인류애를 몸소 실천했던 에밀 조지프 카폰 신부가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습니다카폰 신부는 앞으로 두 번의 기적이 인정되면 성인으로 추대될 수 있습니다조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26일 가톨릭뉴스통신에 따르면 폐렴으로 입원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4일 로마 제밀리 병원에서 카폰 신부를 포함한 가경자 5명과 새로 성인이 될 2명에 대한 교령을 승인했습니다.

 

교황청은 선행과 기적에 따라 가경자와 복자성인 등의 호칭을 수여하는데이 가운데 가경자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가경자 지위를 받은 뒤 생전 또는 사후의 첫 번째 기적이 인정되면 복자로 선포되고복자가 된 뒤 두 번째 기적이 인정될 경우 성인의 칭호가 붙습니다.

 

기적은 통상적으로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치유를 행한 것을 말합니다.

  

부상병 돕다 포로잡혀 35살로 병사

 

1916년 미국 캔자스주에서 태어난 카폰 신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1950년 육군 대위이자 군종 신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카폰 신부는 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에 배치돼 부상병을 돌보고숨을 거두는 장병을 위해 임종 기도를 드리는가 하면 총탄 속에서도 낙오된 병사를 구출했습니다.

 

그러던 중 1950 11북으로 진격하던 미군이 중공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후퇴할 당시 카폰 신부는 탈출 명령을 거부하고 부상병들을 돕다가 중공군의 포로가 됐습니다.  

 

카폰 신부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상황에서도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간호하고 음식을 나눠주며 신앙과 인류애를 실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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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오랜 수감 생활과 구타혹독한 추위와 영양실조 등으로 병에 걸린 카폰  신부는 1951년 5월 23당시 35세의 젊은 나이로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허영엽 대변인은 2021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카폰 신부의 업적과 선행이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줬고그를 통해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북한에도 카폰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허영엽 신부] (북한에도 아는 사람이아마 있을 겁니다왜냐하면포로수용소에서는 정말 유명한 분이셨다고 해요특이한 경우죠실제로 적군인 중공군이나 북한군을 돌보는 데 똑같이 힘썼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사람은 기억할 것이고분명히 이야기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북한에서도 분명히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는 전달됐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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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카폰 신부와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던 동료 병사가 전쟁이 끝난 뒤 카폰 신부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카폰 신부의 사망 소식과 함께 생전 어머니를 회상한 카폰 신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천주교 캔자스주 위치토교구(Catholic Diocese of Wichita) 

 

70년 만에 기적처럼 확인된 유해

 

카폰 신부의 유해는 오랜 기간 발견되지 않아 고향 땅에 묻히지 못했으나2021 3월 미 국방부는 유전자(DNA) 대조를 통해 하와이 국립묘지에 묻힌 신원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를 찾아냈습니다.

 

카폰 신부의 유해는 2021년 9월 장례 미사 후 캔자스주 위치토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에 안장됐습니다.  

 

유족인 조카 레이 카폰 씨는 당시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믿을 수 없는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전했습니다.

 

[레이 카폰] 특히 할머니는 오랫동안 삼촌이 결국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나중에 삼촌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도 할머니는 삼촌의 유해가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하지만 70년은 매우 긴 시간이고삼촌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사실 우리가 실제로 삼촌의 유해를 볼 수 있을까에 대한 희망은 없었습니다유해 발견 소식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유해 확인 신원 확인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카폰 신부는 전쟁터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으며한국 정부도 2021년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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