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내 탈북민들, 단속 강화 속 해외 난민 신청도 ‘막막’
2024.09.13
앵커: 최근 중국 내 탈북민들의 한국행 여건이 특히 어려워지자, 이들 중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해외 난민 신청을 고민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여전히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는 길을 찾기는 좀처럼 어려워 보입니다.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수십 년째 사업을 하는 박 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및 음성 변조 요청) 씨는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이 최근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 난민 신청을 고민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 같다며 4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귀띔했습니다.
[박 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및 음성 변조 요청) 씨] 여기 중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북한 쪽 사람들은 반 탈북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그렇지만 한국 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소식들도 많이 듣다 보니까, 신분적 안정만 보장되면 굳이 남한이 아니더라도 (해외 난민 신청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들었어요, 저는.
몇 년 새 중국이 인력과 장비, AI 기술까지 총동원해 탈북민 단속에 더욱 열을 올리면서 중국 내 탈북민들은 촘촘한 감시망을 피해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한국으로 탈북 기회만 노리던 탈북민들이 언어나 문화 장벽 문제 때문에 주저했던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도 눈을 돌리는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즉, ‘해외 난민 신청’을 해서라도 탈북만 할 수 있다면 용기 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탈북민 구출 상황에 사정이 밝은 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수십 년째 탈북민 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는 활동가 김 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및 음성 변조 요청) 씨는 과거에도 이런 선례가 몇 차례 있었다면서, 하지만 번번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김 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및 음성 변조 요청) 씨] 이전에도 (중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작 중국에서 탈출해서 태국에 가서 미국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미국에서 (탈북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기간이 이전에는 6개월 됐던 게 지금은 1년 5개월 혹은 2년씩 걸리니까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도중에 힘드니까.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난민을 수용하는 나라에서 해외 난민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거나 쉬운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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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신청 서류 작성’을 시작으로 여러 단계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통과해야만 하고, 무엇보다 난민 신청의 가장 첫 단계인 난민 신청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반드시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 내 탈북민들은 이 첫 단계를 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을 받는 것부터 거의 불가능합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자가 서류 심사는 물론 면접을 봐야 하는데,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는 유엔난민기구 베이징 사무실 자체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태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유엔난민기구의 무기력한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면담해야 하기 때문에 탈북민들이 유엔난민기구까지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거고, 그 길목에 (중국 공안이)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하거나 잡아가면 유엔난민기구가 적극적으로 다시 불러 달라 아니면 보호를 요구하는 이런 적극적인 활동이 없습니다. 유엔난민기구 정문에서 (탈북민이) 체포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유엔난민기구가 어떤 행동이나 제지를 하지 못하는 그런 무기력한 상태인 게 문제인데요, 원칙적이고 사실 정상적으로 유엔난민기구가 활동하고 있으면 (중국 내 탈북민들의 난민 신청) 보고를 받아야 합니다.
결국 중국이 중국 내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중국 내에서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해외 난민 신청하기는 현재 상황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겁니다.
반면 중국 내 탈북민들이 북한을 벗어난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국으로 탈북하기까지 평균 3~4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이들은 난민이 아닌 한국 국민으로 간주해 한국 영토에 들어서는 즉시 여타 한국 국민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그 때문에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해외 난민 신청을 고민하는 중국 내 탈북민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현재 한국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지금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탈북의 모 집단이거든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에서 장기간 노출된 사람들이에요. 따라서 상당 부분 중국에 현지화돼 있고 또 한국 문물에도 익숙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게 보면 한국으로 입국했을 때와 해외로 입국했을 때를 비교해 볼 수가 있겠죠. 제3국으로 입국했을 때가 여러 가지 조건들이 더 좋은 경우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제3국인 경우에는 난민 신청이 받아들이기가 거의 매우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희망 항으로서는 뭐 미국이나 유럽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인 선택은 대부분 한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북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국 내 탈북민들이 탈북을 위해 갖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난민기구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 당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