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모든 당 문건 ‘먹’으로 작성하라”
2024.11.05
앵커: 최근 북한 당국이 각급 노동당 조직에 연말을 맞아 작성하는 모든 당 문건을 먹으로 쓸 것을 지시했습니다.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북한 내부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을 움직이는 건 정부인 내각이 아니라 노동당입니다. 노동당은 각 도, 시, 군은 물론 모든 기관에 당위원회를 두고 전국을 통제합니다. 그런 만큼 각급 노동당 조직이 작성하는 문건(서류)도 매우 많습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4일 “10월 중순 당 문건 작성과 관련한 중앙의 지침이 내려왔다”며 “연말에 작성할 문건이 많은 상황을 고려해 하달된 지시”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지시는 연말을 맞아 각급 당 조직이 작성하는 모든 당 문건을 일반 원주필(볼펜)로 쓰지 말고 먹으로 쓰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각급 당 조직이 작성하는 당 문건은 다 보관되는데 원주필로 쓴 문건 내용이 지워지거나 흐려지고 혹은 퇴색되는 등 문건 보관에 문제가 있고, 더 중요하게는 당 문건을 제멋대로 고치는 현상 때문에 이번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잉크보다 먹으로 쓴 글이 오래 보존되고 쉽게 지워지지 않아 북한에서 중요한 문건을 먹으로 써왔고 또 최근 원주필로 쓴 글자를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시장에서 판매된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먹도 흔하고 먹을 사용하는 사람도 꽤 있었으나 지금은 먹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거니와 먹을 구경하기도 힘들다”며 “고난의 행군(1990년대 경제난) 직후에는 먹을 구할 수 없어 당 문건을 일반 검은색 원주필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먹을 쓰지 않다 보니 최근에는 거의 모든 당 문건을 먹과 비슷하고 원주필에 비해 잘 지워지지 않는 검은 마지크(매직펜)로 쓴다”며 “원주필 보다 비싼 마지크가 코로나 이후 더 귀해져 요즘은 마지크 구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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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함경북도의 다른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같은 날 “각 공장 기업소의 행정 문건도 많지만 초급당위원회처럼 문건이 많지는 않다”며 “행정 관련 문건까지 원주필로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연말이 되면 공장 기업소 초급당위원회가 작성해야 할 당 문건이 너무 많아 글을 곱게 쓰는 여성 한 두 명을 현장에서 뚝 떼서 문건 작성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모든 당위원회가 주요 당 회의 기록, 상급당 지시 집행 정형 등 자기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문건을 만들어야 하고 연말이 되면 간부들에 대한 평정서(평가서), 입당 문건을 비롯해 개별 당원에 대한 문건도 작성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일반 당원과 간부가 작성해야 하는 문건도 적지 않다”며 “입당할 때 입당 청원서, 이력서, 가족 및 친척 관계 등을 써야 하고 간부로 처음 등용될 때와 승진할 때 자서전, 이력서, 가족 및 친척 관계 등의 문건을 또 자필로 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전국, 전민을 통제하는 최고 기관인 노동당이 작성하는 문건 중에 사람을 평가하는 문건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그런 문건을 먹으로 써 오래 보관하는게 그렇게 중요한지 궁금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이번 지시와 관련해 일부 당간부들은 정 먹을 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검은 마지크를 그냥 쓸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라며 “없는 먹을 무조건 쓰라고 하는 것 자체가 관료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먹으로 안쓰면 처벌 받는다는 내용은 없지만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당 문건인 만큼 무조건 지시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먹이 없으면 이전처럼 마지크가 계속 사용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