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체류 북 유학생, 귀국 명령에 최근 탈북”
2024.08.26
앵커 : 지난 7월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해외 유학생 전원 귀국을 지시하면서 해당 지역 유학생들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듯합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평양 출신 유학생이 탈북했다는 소식까지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해졌는데요, 진민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몇 년 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평양 출신의 탈북민 김 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 김 씨는 북한에 살 때 옆 동네에 살았던 친구를 최근 한국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김 씨는 그 친구가 “러시아에서 유학하던 중 유학생 전원 귀국 지시를 받고 두려움이 커져 아주 최근 탈북”한 사실을 털어놨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김 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 : 제가 최근에 (만난 사람이) 평양에서 온 저희 옆 동네에서 살던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를 한국에서 만나게 됐는데) 하는 말이 공부는 잘해서 러시아에 (유학) 나왔는데, (강제 귀국 지시로) 들어오라고 하니까… 본인은 ‘이제 한국으로 가야겠다’ 해 가지고 이제 탈북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최근에 왔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을 전후로 ‘중국과 러시아에 체류 중인 유학생 전원을 귀국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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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북한은 해외에 체류 중인 유학생들이 외부 세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평양에 주기적으로 불러들여 정치 강습 등 사상 교육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국경을 봉쇄한 2020년부터 5년 가까이 이런 행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즉 이번에 귀국 지시를 받은 해외 체류 유학생들은 장기간 북한 당국의 감시와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해당 유학생들이 오히려 ‘해외, 그리고 장기 체류’라는 꼬리표를 달고 귀국 후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상 집중 점검 대상이 될 족쇄가 됐다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장기간 체류했던 북한 유학생들의 불안감이 증폭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이로 인한 부담과 두려움으로 인해 이미 북한으로 귀국을 포기하고 러시아 내에 은신 중인 북한 유학생이 몇몇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 러시아 유학생은 계속 탈북해서 숨어있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해외에서 자유를 체험하는 기간이 더 길었고 해외에 오래 있다 보니까 자의이건 타의이건 북한 당국의 규율을 어긴 사항이 많아요. 그러니까 들어가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더 커진 거죠. 그러니까 유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탈북해도 숨어 있어요. (숨어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반면 북한 당국에도 이 같은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라는 시각 또한 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교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2010년 1월 중국에 유학생으로 체류하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실상을 알고 2년 만인 2012년 3월 한국행을 택했던 탈북민 김금혁 씨.
김 씨는 이 장기 해외 체류 유학생들이 김정은 정권 체제 유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때문에 이들이 북한으로 귀국하게 되면 전례 없는 강력한 사상 통제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김금혁 (중국 유학 중 2012년 탈북) : 일단 5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긴 시간이거든요. 북한 당국도 이 유학생들이 지금 5년 동안 북한 통제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에 분명 ‘이중의 대다수는 북한 체제에 대해서 반감을 품을 거다’라는 두려움을 (북한 외부에 있는) 우리보다 더 크게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어쨌든 이 친구들이 향후 북한 정권을 뒤흔들 수 있는 구심점이 될 수도 있고, 또 감추려고 한 그런 사실들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상 통제나 이런 것들을 매우 강한 강도에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걸리면 많은 사람이 같이 줄줄이 엮어서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조한범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의 중국 및 러시아 유학생 강제 소환 방침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고위급 외교관과 엘리트층에 이어 북한 유학생들의 잇단 탈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 중국과 러시아에 나와 있던 사람들 있죠? 공관원, 그다음에 엘리트 유학생, 노동자 이런 사람들은 탈북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죠. 리일규 쿠바 주재 참사처럼 이런 쪽 사람들이 많이 탈북하게 될 거고, 러시아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유학생)이 도움을 받는다면 또 이제 (한국으로) 올 가능성이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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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며 유학생들과 교류가 잦은 교민 이 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북한과 러시아가 친밀해진 이후 부쩍 고립된 생활을 자청하는 러시아 내 북한 유학생들 분위기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해왔습니다.
이 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 :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남북한) 학생들끼리 예전에는 몰래 대화도 하고 몰래 같이 술도 먹고 이런 식의 교류가 있었는데 지금은 학생들하고 얘기해 보면 (그런 게) 전혀 없는 거 같아요, 전혀. 일단 학교에서도 (남북한 학생을) 같은 반 배정을 안 해요. 같은 과 수업도 못 듣고 (같은 과) 배정을 안 하더라고요. 남한 사람들로 보이면 피하고 이런 분위기예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다만 유학생 출신 김금혁 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러시아 내 북한 유학생들의 이런 분위기도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김금혁 (중국 유학 중 2012년 탈북) : 어쨌든 (지금 북한) 유학생들에 대해서 감시의 시선이나 이런 걸 한국 언론이나 다른 서방 언론에서 많이 집중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애초에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는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아마 이런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거라고 보지는 않죠. 단지 지금의 광풍은 잠시 피해 가자는 생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2020년 국경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고, 최대한 천천히 빗장을 열고 있는 북한.
북한 당국의 이러한 결정이 자국 유학생들의 해외 장기 체류 상황을 초래하면서 유학생들의 잇단 탈북으로 이어질 지 주목됩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