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산지농장, 당국 지시에 ‘조기 파종’ 했다가 서리 피해
2024.05.16
앵커: 최근 갑작스러운 추위로 북한 양강도의 산간오지 농장들이 서리 피해를 입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15일 저녁부터, 16일 새벽까지 북한 북부고산지대인 양강도의 밤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침엔 고여있는 물웅덩이에 살얼음이 꼈는데 산간오지 농장들은 서리 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습니다.
양강도의 한 농업부문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6일 “어제(15일) 낮부터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해 밤에는 강한 서리까지 내렸다”면서 “밤사이 서리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가 시 농촌경리위원회 현장 감시실에 연이어 들어왔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아직 현장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지만 지대가 높은 삼지연시와 대홍단군, 보천군과 운흥군, 백암군의 농장들이 피해가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올해는 봄이 일찍 찾아와 씨붙임(파종)을 예년보다 열흘이나 앞당기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씨붙임을 앞당기라는 건 중앙과 내각 농업위원회의 지시였다”며 “애초 씨붙임을 앞당기라는 지시가 내렸을 때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중앙과 내각 농업위원회의 지시를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면서 “농장에서 심은 종자들은 벌써 싹이 크게 돋아 현재 김매기가 한창인 상황”이라고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농장에서 가꾸는 밭들은 서리 피해를 크게 입은 반면, 개인들이 가꾸는 뙈기 밭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며 “농장들은 4월 25일부터 시작해 5월 5일까지 씨붙임을 끝냈지만 개인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5월 9일부터 씨붙임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국가는 제멋대로 씨붙임을 앞당겨도 개인들은 경험에 비추어 씨붙임에 신중하다”며 “날씨가 아무리 따뜻하거나 추워도 개인은 씨붙임을 앞당기거나 늦추지 않는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16일 “밤새 내린 된 서리로 농장 밭들은 강냉이와 감자, 메주콩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면서 “농장 밭들은 김매기를 할 만큼 싹이 컸지만 개인 뙈기 밭들은 이제야 싹이 돋기 시작해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농장들이 이렇게 큰 서리 피해를 입은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며 “알곡 증산에 매몰돼 국가가 계절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양강도는 해마다 서리 피해를 두번씩 겪는데 지금 입은 피해는 애벌일 뿐”이라며 “5월 중순에 첫 서리가 내리고, 5월 말 경에 다시 늦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이번 서리 피해는 이미 예상했던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보통 한번 시작된 서리는 3일 연속으로 내린다는 것이 양강도 주민들의 고정된 상식”이라며 “때문에 이번 서리 피해는 16일 새벽, 한 번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소식통은 “양강도의 주 작물은 감자와 강냉이, 메주콩”이라면서 “그 중 감자와 강냉이는 외엽(외떡잎) 식물이기 때문에 서리 피해를 입어도 살아날 수 있지만, 메주콩은 쌍엽(쌍떡잎) 식물이어서 한번 서리 피해를 입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소식통은 “서리에 강한 감자와 강냉이도 일단 한번 피해를 보면 생육 활동이 크게 위축돼 씨붙임을 앞당긴 효과를 잃게 된다”며 “서리 피해를 입은 메주콩은 아예 밭을 갈아 엎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모든 식물은 수명이 있기 때문에 씨붙임을 앞당겨도 특별히 성장속도가 빨라지거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아니”라면서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국가가 이런 원리조차 깨닫지 못하니 농사를 망쳐도 누구를 탓하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