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일부 지식인들 “지방 경제발전 ‘명태’ 없인 불가능”
2024.05.13
앵커: 김정은 총비서의 지방발전 정책과 관련해 최근 북한의 일부 지식인들 속에서 때아닌 명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3월, 중국 동북지방에 파견되었다는 북한 무역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지난 7일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을 놓고 최근 우리(북한)의 젊은 간부들과 지식인들 속에서 김일성 시대를 돌이켜 보자는 움직임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자신이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나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모두 경험했다는 이 소식통은 “지방발전 정책과 관련해 김일성 시대를 불러낸 건 중앙당 선전선동부였다”며 “지방경제가 흥했던 1980년대 초의 경험을 되살리자는 의도에서 김일성 시대를 불러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선전선동부의 의도는 매우 좋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명태 문제가 불거졌다”며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지방경제가 흥했던 원인은 김일성이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동해바다에서 명태를 무진장하게 퍼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지방발전 경험이 때 아닌 명태 논란(김일성이 정치를 잘해 당시 북한 경제가 좋았던 것이 아니다)으로 확산되자 중앙에서도 몹시 당황한 분위기”라며 “중앙에서 급히 파견된 간부들이 기관장 회의에 나와 ‘좋은 경험을 살리자는 목적이지, 지나간 (김일성) 시대를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강연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강연은 중국에 파견된 우리(북한)의 무역부문 간부들을 상대로도 진행되었다”면서 “심양에 있는 우리(북한) 영사관 초급당위원회에서 지난달 30일과 31일, 무역부문 간부들을 불러 놓고 부총영사가 직접 출연해 강연을 진행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친척방문을 나왔다는 한 화교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9일 “요즘 북한 지식인들의 명태 논란을 잘 알고 있다”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태를 대신할 자원이 없는 한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은 실패가 명백하다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이 명태 논란으로 번진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명태의 역사에 북한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며 “명태의 역사를 잘 알아야 북한의 미래도,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도 올바르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북한은 겨울철 동해바다에서 배가 없어 더 이상 건지지 못할 만큼 명태를 많이 잡았다”면서 “이렇게 잡은 명태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수출하고 그 대가로 원유와 설탕, 식량과 무기를 사들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당시 김일성은 명태 뿐 아니라 게와 가자미, 말린 까나리와 문어, 지어 성게알과 새끼장어까지 바다에서 나오는 자원을 모조리 팔아 외화를 챙겼다”면서 “입으로는 자립적 민족 경제를 외쳤지만 정착 명태 수출에 도취돼 (외화가 들어오자) 자립적 경제는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명태가 동해바다의 물흐름이 바뀌면서 1983년말, 1984년 초 사이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며 “1984년 5월, 김일성이 한달 일정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을 방문했던 이유도 명태의 공백으로 인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겉으로만 환영하는 척했을 뿐, 외화가 없는 김일성을 더 이상 반기지 않았다”면서 “당장 동유럽에서 받던 원유부터 끊기면서 1984년 말, 1985년 초 사이 북한에 처음으로 목탄차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소식통은 밝혔습니다.
“급해 맞은 김일성은 명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병원과 학교, 공장과 가정에 난방용으로 공급되던 석탄을 모조리 수출로 돌렸다”면서 “원유를 들여오지 못하면서 비료가 생산되지 않았고, 비료가 없어 농사를 망치는 등 이때부터 북한 경제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고 소식통은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이때부터 북한 주민들은 땔감이 없어 산에 나무를 몰래 베어 내기 시작했다”며 “농사가 안되고 땔감도 없으니 지방공업공장들도 하나 둘, 생산을 멈추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이런 경험에 비추어 오늘날 북한 지식인들은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을 실현 불가능한 조치로 보고 있다”며 “지방공업공장들을 제대로 돌리려면 과거의 명태와 맞먹는 자원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북한엔 그런 자원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