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북 주민들 “잔디 심고 꽃밭 꾸미면 저절로 현대화, 문명화 되나?”
2024.05.21
앵커: 지방 현대화와 농촌 문명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북한 당국이 도시와 농촌의 원림녹화 사업을 강요하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평양시 살림집 건설과 지방공업공장건설, 농촌살림집건설에 농촌동원까지, 온갖 건설과 동원으로 북한 주민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 당국이 도시와 농촌의 원림녹화 사업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소식통들이 전했습니다.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0일 “중앙의 지시로 5월 10일부터 전국적인 범위에서 원림조성 시범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며 “5월말까지인 원림조성 시범사업은 도시와 농촌의 일정 지역을 원림녹화의 본보기 지역으로 꾸리는 사업”이라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일단 5월까지 정해진 지역의 시범 원림녹화 사업을 끝내고, 이후 이를 본보기로 도시와 농촌의 전반적인 원림녹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중앙의 계획”이라며 “양강도의 소재지인 혜산시는 혜산운동장부터 혜산역까지 구간을 원림녹화 시범지역으로 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시범지역의 원림녹화 사업은 공장, 기업소가 아닌 혜산시의 각 동사무소, 인민반들에서 맡아 진행하고 있다”며 “공장, 기업소들은 평양시 건설과 농촌살림집건설, 농촌동원에 인원을 모두 투입하다 보니 더 이상 동원할 노력(노동력)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인민반마다 일정 구간을 맡아서 가로수와 잔디심기, 생울타리(나무를 빼곡히 심어 만든 울타리)와 꽃밭 조성을 하고 있는데 원림녹화에 필요한 시간은 따로 정해주지 않았다”면서 “식전동원(아침 먹기 전 동원)과 주말동원으로 원림녹화를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원림녹화에 필요한 나무와 잔디, 꽃씨는 모두 인민반에서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며 “잔디는 가까운 산이나 들에서 떠오면 되는데, 나무는 가까운 산에 없어 휴식일인 일요일에 인민반마다 가족들을 동원해 도시에서 수십리 이상 떨어진 먼 산에 가 떠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또 다른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0일 “원림녹화 시범지역으로 정해진 혜산운동장에서 혜산역까지 구간은 2022년 1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도로확장공사가 진행된 곳”이라며 “도로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보니 가로수도 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연봉천이 흘러내리는 혜산운동장 동쪽 구간은 겨울철 동네에서 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아직까지 쌓여있어 숨쉬기조차 힘이 든 상태”라면서 “이곳을 정리해 잔디밭과 계단식 꽃밭을 만들고 도로를 따라 혜산역까지 생울타리를 조성하는 것이 시범사업 과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원림조성 시범사업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14기 10차회의에서 김정은이 내놓은 지방 현대화, 농촌 문명화 사업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지방공장건설을 통해 지방의 현대화를 실현하고 농촌살림집건설을 통해 농촌의 문명화를 실현한다는 것이 김정은의 의도”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지방 현대화와 농촌 문명화를 위한 김정은의 노력이 주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도시와 농촌의 원림조성 사업만 해도 주민들은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잔디밭을 만들고 꽃을 심으면 저절로 문명사회가 되냐?’는 말을 노골적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나무심기라는 구실로 해마다 산에 나무를 마구 떠다 가로수를 조성하고 생울타리를 만들면서 오히려 산을 벌거 벗기고 있다”며 "초봄에 산에서 떠다 심어야 나무가 살아 남을 수 있는데, 늦봄인 지금 산에서 떠온 나무는 심으면 대부분 죽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지금의 원림녹화 시범사업이 지방 현대화와 농촌 문명화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의 원림녹화 사업은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해마다 있었다”면서 “주민들은 도시 현대화와 농촌 문명화가 왜 원림녹화에서 시작되는지 그 이유조차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