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조총련의 몰락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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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로동신문은 외부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종종 외국 단체가 등장합니다. 이 단체는 바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즉 조총련 입니다. 물론 북한 관영언론만 보는 사람들은, 조총련은 70만 재일동포가 열심히 지지하는 막강한 단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총련은 작은 단체가 되었고. 일본에서 정치 영향력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수십년 전에는 상황이 사뭇 달랐습니다. 1960-1970년대 총련은 진짜 대규모 조직과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에 일본 본토에는 거의 300만명 정도의 조선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다수는 한반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80-90만명의 조선인들은 여러 이유 때문에 일본에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에 일본에서 조선사람들은 차별을 많이 당했고, 불만이 많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체제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을 열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민주국가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싫어하는 재일동포들은 자기 단체를 만들고, 아주 시끄럽게 일본을 비난했습니다. 재일동포 중 다수는 사회주의에 호감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1955년 공식적으로 조총련을 창립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총련의 시작입니다.

당시에 재일교포들 가운데 조총련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재일교포 다수는 북한 출신이 아니지만, 사회주의국가였던 북한에 희망과 기대가 참 많았습니다. 당시에 북한은 남한보다 잘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조총련에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조총련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북한으로 송금했습니다.

1950-1960년대 조총련은 사실상 국가 안의 국가로 기능했습니다. 학교도 은행도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무시를 받은 조선사람들은 열심히 단결했습니다. 북한과 관계가 아주 많고, 조총련 본부는 사실상 북한대사관이었습니다. 조총련은 북한 첩보활동과 밀무역을 열심히 도와주는 기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일본이든 미국이든 소련이든 전문가들은 조총련 간부라면 사실상 북한 공작원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는데요. 이것은 별 과장이 없는 사실입니다.

1950년대 말부터 벌어진 귀국자 사업에서 조총련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0만 명의 재일동포들은 북한으로 갔는데요. 조총련의 선전과 모집은 매우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조총련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조총련은 사실상 북한 당국의 하부기관으로 움직였는데, 북한 경제는 갈수록 남한 경제보다 뒤쳐졌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달리 재일교포들은 누구든지 이 사실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북한으로 간 동포들은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북한 기준으로는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부자국가인 일본 기준으로 열악한 생활입니다. 귀국자들은 일본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요청하는 편지를 열심히 보냈습니다.

셋째로 일본에서 교포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가 매우 약해졌습니다. 동포들의 아들딸, 손자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조선말을 잘 모르고, 친구도 대부분 일본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조선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사실상 일본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조총련은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돈을 거의 벌지 못합니다. 원래 53만명이었던 규모는 지금 8만명입니다. 사실상 노인들만 남아 있다고 해도 별 과언이 아닙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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