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미라와 미래

그렉 스칼라튜· 루마니아 출신 언론인
2011.12.27
12월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이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영결식이 권력세습과 김위원장의 막내 아들인 김정은이 주도하는 체제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영결식에 참석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시신이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시신과 함께 김수산 기념궁전에 안치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김수산 기념궁전은 김씨 일가의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북한 세습권력독재 체제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두 독재자의 미라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이 인류 역사상 처음은 아닙니다. 냉전시대에 이러한 경우가 구 소련에도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은 국민의 고통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이들을 지배하면서 항상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습니다. 이를테면 커다란 궁전과 동상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 합니다. 더 구체적인 사례는 소련의 레닌이나 스탈린, 유고의 티토, 베트남 즉 윁남의 호지명이나 북한의 김일성처럼 죽은 후에 자신의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일, 세습 체제를 이룩하는 일 등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레닌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 웅장한 무덤을 모스크바의 유명한 ‘붉은 광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24년 레닌 사망당시 그의 시신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방부 처리되었습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소련의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미라도 레닌 미라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정권은 스탈린 정권의 특징이던 강제수용소와 극심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물론 흐루시초프도 개혁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전 독재자이던 스탈린을 비판했습니다. 흐루시초프도 소련과 동유럽 사람을 공산주의 노예 제도에서 해방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며 스탈린의 미라를 레닌의 웅장한 무덤에서 크렘린 궁전에 있는, 다른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붉은 제국이던 소련과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지 20년이 지났지만, 공산주의 아버지인 레닌의 미라는 아직까지 ‘붉은 광장’의 기념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에서는 레닌의 미라를 더는 방부 처리하지 말고 땅에 묻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로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공산주의 시대에 레닌의 미라가 체제의 상징 중 하나였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공산주의 체제의 탄압과 인권 유린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젠 레닌의 미라는 사람들을 심하게 탄압하던 실패한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상징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레닌의 미라를 계속 전시하려면 방부 처리 또한 계속 해야 하는데,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한 러시아 사람들이 거기에 돈을 낭비할 마음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1천년의 깊은 역사를 가진 러시아 동방정교회는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권위를 되찾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시신을 방부 처리하지 않고 매장을 하기 때문에, 러시아 동방정교회는 레닌의 시신도 더는 방부 처리하지 않고 땅속에 묻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습니다. 레닌은 동방정교회를 탄압하던 공산주의 독재자였지만, 정교회는 이제 레닌을 용서하고, 다른 기독교 신자처럼 땅속에 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같은 경우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고대 이집트 왕처럼 방부 처리하는 일에 많은 돈을 들이기보다는 국민들의 복지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어떠한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입니다. 북한은 두 독재자의 미라가 상징하는 탄압과 굶주림의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개혁과 개방을 고려해야 할 시기가 급속히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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