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티우 칼럼]루마니아 독재자의 이루지 못한 권력 세습
2008.09.28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정권을 넘겨줘야 한다면 여러가지 추측중에 김정일의 자녀에게 이어지는 권력세습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37세인 김정남, 27세인 김정철, 25세인 김정운, 김정일의 세아들과 딸34세의 김설송씨 중 유력한 후계자는 27세인 차남 김정철이라는 것이 많은 대북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14년전 이뤄진 북한의 2대세습이 3대세습으로 이어질수도 있다면 먼저 옛날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자녀들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냉전시대때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북한 전 국가 주석 김일성과의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루마니아 독재자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식 개인숭배에 반한 나머지 루마니아에도 비슷한 개인숭배를 조장하려 했습니다. 차우체스쿠는 1980년대초반부터 큰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아내 엘레나는 아들 둘, 딸 하나 인 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 세 자녀들 중 정치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사람은 큰 아들 '니쿠'였습니다. 큰 아들 '니쿠’는 공산당 청소년회장으로 활동해 많은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술고래라는 별명이 있었고 특히 성폭행과 관련된 소문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사람들 중에는 젊고 학력이 높고 해외여행의 경험이 많은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경우 아버지 때보다는 생활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진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80년대 후반 반공산주의 혁명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아버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민간인들과 루마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감옥에 가진 않았고 그러다 지난 1996년 9월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대부분 루마니아 사람들은 '니쿠'를 악명 높은 술고래와 바람둥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옛날 '니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신문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옛날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자녀였으며, '니쿠'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혼란스러운 생활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에의하면 니쿠는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지만, 사실 낭만적인 남자이며 여성 앞에서는 부끄럼 때문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야, 여자들과 말을 걸곤 했다고 합니다. 또 그가 루마니아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니쿠'도 부모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니쿠'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자식에게 너무 강했고 큰아들을 아버지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공산당 간부의 딸과 결혼을 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니쿠'의 친구들은 어머니의 지독하고 엄격한 태도에 반항하려고 그의 사생활이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큰 아들인 '니쿠'는 타고난 아버지와 같은 잔인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좋은 사람인데 부모의 욕망과 엄격한 감시와 지독한 교육 때문에 너무나 불행하여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사람이었을까...
열심히 노력만 했더라면 부모에게 그가 느끼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로 왜 나가고 싶은 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혈적 혁명과 국민들의 희생 없이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체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니쿠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 기회를 놓쳤고 루마니아 역사에 있어서 유산도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인물이 돼 버리고 만것입니다.
14년전 이뤄진 북한의 2대세습이 3대세습으로 이어질수도 있다면 먼저 옛날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자녀들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냉전시대때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북한 전 국가 주석 김일성과의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루마니아 독재자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식 개인숭배에 반한 나머지 루마니아에도 비슷한 개인숭배를 조장하려 했습니다. 차우체스쿠는 1980년대초반부터 큰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아내 엘레나는 아들 둘, 딸 하나 인 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 세 자녀들 중 정치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사람은 큰 아들 '니쿠'였습니다. 큰 아들 '니쿠’는 공산당 청소년회장으로 활동해 많은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술고래라는 별명이 있었고 특히 성폭행과 관련된 소문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사람들 중에는 젊고 학력이 높고 해외여행의 경험이 많은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경우 아버지 때보다는 생활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진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80년대 후반 반공산주의 혁명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아버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민간인들과 루마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감옥에 가진 않았고 그러다 지난 1996년 9월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대부분 루마니아 사람들은 '니쿠'를 악명 높은 술고래와 바람둥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옛날 '니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신문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옛날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자녀였으며, '니쿠'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혼란스러운 생활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에의하면 니쿠는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지만, 사실 낭만적인 남자이며 여성 앞에서는 부끄럼 때문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야, 여자들과 말을 걸곤 했다고 합니다. 또 그가 루마니아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니쿠'도 부모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니쿠'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자식에게 너무 강했고 큰아들을 아버지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공산당 간부의 딸과 결혼을 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니쿠'의 친구들은 어머니의 지독하고 엄격한 태도에 반항하려고 그의 사생활이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큰 아들인 '니쿠'는 타고난 아버지와 같은 잔인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좋은 사람인데 부모의 욕망과 엄격한 감시와 지독한 교육 때문에 너무나 불행하여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사람이었을까...
열심히 노력만 했더라면 부모에게 그가 느끼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로 왜 나가고 싶은 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혈적 혁명과 국민들의 희생 없이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체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니쿠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 기회를 놓쳤고 루마니아 역사에 있어서 유산도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인물이 돼 버리고 만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