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성사 안된 미북 비밀정상회담
2015.12.29
며칠 전 북한에서 ‘로므니아’로 알려진 루마니아 사람들이 공산주의 독재 붕괴 26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은 내부에서 인권을 심하게 유린하고 있었지만, 대외 정책에 있어서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적인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1970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호감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열악한 식량상황과 심한 인권유린이 폭로된 후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결국 차우셰스쿠 정권이 불량정권임을 알게 됐습니다.
몇년 전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4년 8월 북한 김일성 주석은 루마니아를 통해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에게 비밀 정상회동을 제안했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북한 요원에게 암살을 당한 직후였습니다. 김일성 주석과 가까웠던 차우셰스쿠는 미국이 비밀 정상회동을 원한다면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포드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간의 확고한 화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러한 접촉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결국 그 비밀 정상회동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북한은 왜 미국을 적대국으로 내세우면서도 미국과 접촉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시도한 미국과 중국 간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한국으로 암살자를 보내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 했던 것은 정말 터무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과 가까웠던 차우셰스쿠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독재 국가 간에 중개자 역할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국민을 탄압하고 굶기던 루마니아 독재자는 그의 아내를 ‘루마니아의 천재’라 칭했습니다. 독재자가 연설할 때마다 세계 평화와 세계 비핵화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선전은 그를 ‘세계 평화를 변호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공산주의 선전, 해외정보국 요원들과 외교관들은 차우셰스쿠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특히 루마니아의 열악한 인권 상황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사실 평화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의 해외정보국 대장이던 미하이 파체파(Mihai Pacepa)장군은 1978년 서독으로 출장을 갔지만 루마니아로 귀국하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1980년대 ‘붉은 지평’이라는 책에서 차우셰스쿠의 생각, 사고 방식과 행위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많이 폭로했습니다.
‘붉은 지평’에 따르면, 루마니아 비밀 요원들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외국에서 마약 무역을 하고 위조 화폐와 무기를 밀수입 하곤 했습니다. ‘붉은 지평’에서 파체파 장군은 이들이 악명 높은 국제 테러리스트와 연계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루마니아 외교관들의 주요한 임무는 독재자를 ‘세계 평화의 변호인’으로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차우셰스쿠는 외국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프리카, 아시아와 중남미에 있는 제3세계 독재자들에게 빌려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부르끼나파쏘 (부르키나 파소)의 토마스 상카라와 김일성이 차우셰스쿠에게 대출금을 받아 왕과 황제들의 절대적 정치력을 상징하는 비싼 선물을 주곤 했습니다. 또 그들이 각 나라에서 루마니아 독재자와 아내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고, 그들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번역하고 인쇄하게 했습니다. 루마니아는 그러한 대출금을 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회수 불능의 대출금 때문에 루마니아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식량 부족도 더 심해졌습니다.
그때 루마니아 사람들은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 당장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에 대출을 해줄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었습니다.
차우셰스쿠와 같은 독재자들의 행동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과 실패를 볼 수 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25일 반공산주의 혁명으로 군사재판에 의해 사형을 당하기 직전 12월 4일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유치한 마지막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 구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에 의해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은 개방과 개혁을 시도했지만 차우셰스쿠만이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공개된 서류에 의하면 1989년 12월 4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의 정상회담을 가질 때 차우셰스쿠는 제3세계를 위한 은행을 설립하고 싶다고 소련의 지도자이던 고르바초프에게 말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국민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래로 향하는 개혁과 개방을 거부한 그는 제3세계 중개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루마니아 국민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