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로므니아 반공산주의 혁명 30주년 기념과 북한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9.12.24

12월17일부터 25일까지 로므니아 (루마니아) 주민들은 30년 전 자유를 되찾은 주간을 기념했습니다. 그 당시 로므니아 국민 혁명에 의한 해방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로므니아 주민들은 1945년 소련군의 군화발에 짓밟혀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됐으며, 1965년부터 1989년까지 25년 가까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 체제에서 살았습니다. 1980년대말 인권유린과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로므니아 주민들 중 차우셰스쿠의 정권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유럽 나라에서 자유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로므니아 주민들은 결국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힘을 모았습니다.

1989년 12월 17일, 로므니아 서부에 있는 티미쉬아라라는 도시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티미쉬아라는 유고슬라비아와 마쟈르 (헝가리) 국경에 가까우며 북한의 신의주처럼 밀수입과 비공식적 시장 활동이 활발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많은 티미쉬아라 주민들은 친척이 망명하여 외국에서, 특히 서독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틀이 지난 1989년 12월 19일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이란에서 정상회담 뒤 귀국해 곧바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그날 저녁 차우셰스쿠는 텔레비전 방송 대 국민연설을 통해 티미쉬아라에서 일어난 사건은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혐오하는 민중의 혁명이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외국 비밀 요원들의 짓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로므니아 사람들은 이미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티미쉬아라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차우셰스쿠의 거짓말과 공산당 선전을 믿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된 차우셰스쿠는 대 국민연설 이틀 뒤, 로므니아 수도 부꾸레슈띠 중심가에 있는 공산당 본부 베란다에서 수 천명의 군중에게 또 다른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공산당집행위원회가 중요한 법령을 결정했다면서 1990년 1월 1일부터 로므니아의 최저임금을 10% 올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민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굶주리고 헐벗게 했던 독재자가 이제와서 임금 몇푼을 올려 주겠다고 떠들어 대는 사탕발림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날 군중은 지난 25년동안 차우셰스쿠의 연설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위대하신 영도자"라는 구호를 외쳐댔던 군중이 더이상 아니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는 동안 이들은  독재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25년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차우셰스쿠의 얼굴 표정은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연설을 중계하던 텔레비전 방송은 끊기고, 전기확성기도 꺼졌습니다. 위협을 느낀 차우셰스쿠는 옆에 있던 아내와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공산당 본부건물안으로 즉시 도피했습니다. 이날 밤새 차우셰스쿠와 그 일당이 공산당 본부건물 안에 피신해 있는 동안 로므니아 수도인 부꾸레슈띠에서는 반공산주의 혁명이 크게 번졌습니다. 대학생들, 노동자들, 민간인들 다 같이 길가에 나가 밤새도록 전투 경찰, 내무부 군인들, 비밀 경찰, 국방부 군인들과 충돌하면서 수십명이 희생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22일 아침 민간인들은 군인들에게 담배와 꽃을 주면서 같이 싸워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설득했습니다. 중앙 라디오 방송국은 밀레아 (Milea) 국방부 장관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그가 배신자임을 비관해서 자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혁명대열에 가담한 민간인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는 죄 없는 사람들을 더 이상 죽일 수 없어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새로 국방부 장관이 된 스턴쿨레스쿠 (Stanculescu) 장군도 대학살하려는 도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독재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로므니아 군인들은 더는 독재자를 보호해 주지 않고, 민간인과 손을 잡았습니다. 민간인들도 땅크 (탱크)와 장갑차위에 올라가서, 군인들과 같이 공산당 본부를 공격했습니다. 민간인 수백명이 문을 부수고 공산당 본부에 들어간 후에,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건물위에 있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해방된 로므니아 방송국에서 독재자가 도망쳤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외국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헬기 조종사는 미사일에 맞아 추락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헬기를 도중에 착륙시켰습니다. 독재자의 경호원들까지도 민간인들을 죽인 차우셰스쿠를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몇 시간 후에 로므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었습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 차우셰스쿠 부부는 군사 재판을 받고 사형 당했습니다. 그들이 사망하자 로므니아 전국에서 싸움의 총 소리는 그쳤습니다. 드디어 로므니아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로므니아 주민들은 1989년12월22일 자신의 힘과 희생을 통해 자유를 찾아 독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로므니아 반독재 혁명의 교훈은 정치탄압, 인권유린과 공포정치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위간부, 군인, 보안원과 일반 주민들이 드디어 독재자와 그의 가족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면서도 시련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 선택권이 있는 사회에서 살면 시련이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혁명이후 지난 30년동안 로므니아는 쉽지 않은 전환기를 겪었지만, 국민의 생활 수준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로므니아도 마쟈르, 체스꼬 (체코), 벌가리아 (불가리아)와 다른 동유럽국가들처럼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모든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나라의 미래를 자유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유가 없는 북한의 암울한 현실이 중첩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므니아의 교훈 삼아 지난 74년동안 탄압, 통제와 공포 속에서 살던 북한 주민들도 어느날 자유와 번영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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