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독재체제가 잊은 아이들
2021.11.16
지난 2년 가까이 북한 당국은 코로나 방역 명목으로 스스로 고립돼 예전보다도 더 심한 기아 상황 속에서, 경제부패와 정치적 억압이 더 심화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엔 기구와 인도적 비정부기관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려면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을 파악해야 하며 북한에 직접 들어가 방해 없이 현지조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 노출을 꺼리는 북한 당국의 비밀주의와 불투명성 때문에 이런 조사 실행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 특히 취약계층의 인도적 상황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열악한 이들 중 하나라 바로 정신병이나 정신 장애가 있는 아이들 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옛날 동구라파 공산주의 시대 때 추억이 떠오릅니다.
공산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병에 걸린 환자들입니다. 특히 시골 오지에 사는 병 걸린 아이들의 경우는 더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식량과 영양이 부족한데다 적절한 의료 시설에도 갈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로므니아(루마니아)의 부꾸레슈띠 (부카레스트)나 북한의 평양과 같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의 수도 시민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어도, 시골에 사는 아이들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로므니아 공산주의하에 살면서 온 국민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특히 시골에 사는 아픈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1989년말 독재자와 그의 아내가 사형을 당하고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야 비로서 시골 로므니아 아이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시 저는 부꾸레슈띠 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는 1학년 대학생이었습니다. 몇 개월전 개방된 로므니아에는 많은 외국 복지단체들이 들어와 불쌍한 사람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곤 했습니다. 저는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1990년 봄방학에 통역으로 영국 적십자 의사들이나 간호사들과 함께 로므니아의 시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2주는 저에게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공산 독재시절 로므니아의 많은 시골 의료원에서는 주사 바늘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아,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독재 체제가 무너진 다음 시골 의료원은 외국 원조 단체로부터 많은 약품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시골 의사들은 외국어로 된 처방법을 읽을 수 없어 제대로 약품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 제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경험은 시골에 있는 여러 소아 정신 의료원과 재활원 방문이었습니다. 당시 그 곳 아이들의 상황이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적절한 음식과 옷, 의약품이 없는데다 공간도 너무 좁았습니다. 한 침대에서 아이들이 두 명이나 세 명이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치료를 받아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이 가능한 정신장애 아이들과 회복이 불가능한 아이들이 같은 병실에 함께 있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정부는 독재자를 숭배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회복이 가능한 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치료비를 지불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런 시골 의료원에는 의사도 없이 간호사만 서너명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활센터 간호원들은 직무에 충실하면서 최선을 다 하려고 했지만, 공산주의 독재 정부는 그들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공산 독재정권은 정신병이 있는 아이들과 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고 그들의 고통을 아무도 모르게 시골속 의료원에 가뒀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지 32년 후, 로므니아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개혁을 이루면서 국민들 생활 수준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특히 의료 차원에서 아직까지 극복하기 어려운 공산주의 독재 유산이 남아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공산주의 독재 체제의 유산입니다. 로므니아 독재자이던 니꼴라에 챠우쉐쓰꾸 시대, 온 국민이 어렵게 살았지만 공산당의 선전 보도와 통계는 항상 긍정적이었고, 로므니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계속 향상되고 있다고 당국은 거짓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당시 공산당 간부들은 독재자에게 높은 신생아 사망율을 그대로 보고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990년전에는 조산후 신생아의 몸무게가 1킬로그램 이하일 경우 병원에서 2주 기다리다 출생 신고를 하곤 했습니다. 2주가 지난 후 신생아가 살 것 같으면 출생 신고를 하고 2주내 신생아가 사망하면 출생신고를 안했기 때문에 사망 신고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산당 간부들은 실제로 아주 높은 신생아 사망률을 은폐하곤 했습니다.
요즘 정작 관심을 받아야 할 북한 아이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그들 중 상황이 너무나 어려운 정신병이나 정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상황은 또 어떤가요? 옛날 로므니아 니꼴라에 챠우쉐쓰꾸 독재시절 당시 시골에 사는 아이들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할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전염병 등으로 비롯된 열악한 인도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주의와 고립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투명성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