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미국으로 망명한 루마니아 ‘슈퍼 스파이’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3.10.31
[스칼라튜] 미국으로 망명한 루마니아 ‘슈퍼 스파이’ 로므니아 (루마니아) 공산주의 해외정보국 (Direcția de Informații Externe, DIE) 부부장 출신 이온 미하이 파체파 (Ion Mihai Pacepa) 장군의 사진.
/AFP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회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회장
지난 10월 28일은 로므니아 (루마니아) 공산주의 해외정보국 (Direcția de Informații Externe, DIE) 부부장 출신 이온 미하이 파체파 (Ion Mihai Pacepa) 장군의 출생 95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파체파 장군은 2021년 2월15일 93세에 코로나-19 감염에 의해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사망했습니다. 냉전시대 때 파체파 장군은 지위가 가장 높은 공산주의 국가 망명자였습니다. 파체파 장군의 증언을 담은 ‘붉은 지평: 차우셰스쿠 일가의 범죄, 부정부패와 유산’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1980년대 구소련과 다른 공산주의 독재 국가에 대한 최대압박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로므니아는 냉전시대에 김일성 전 국가주석이 지배하던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동구라파 독재 국가였습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공산당 총비서 독재주의 국가의 해외정보국 부부장이던 파체파 장군은 독재자의 오른팔로서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같은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은 화학과 출신이었습니다. 로므니아 국가안전보위부는 1951년, 영리하고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성분이 좋은 23세인 파체파를 영입했습니다. 파체파는 그 이후 로므니아의 ‘슈퍼 스파이,’ 즉 주요 간첩이 되면서 빠른 승진을 했습니다. 파체파는 1956년 외화벌이 담당 겸 간첩 의무를 담당하면서 로므니아 주 서독 상업 흥신소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1959년 귀국해서 해외정보국 3호실 실장, 즉 동서독,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나라 최고 정보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파체파는 1966년부터 1978년 미국으로 망명할 때까지 해외정보국 부부장 칙잭을 가지며 1967년에 소장이 되었고1974년에 중장이 되었습니다.


파체파는 김일성과 가까운 우정을 맺었던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오른손 역할을 하면서 주로 자본주의 나라 산업 관련 정보를 얻는 간첩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우셰스구가 해외에 거주하는 반체제인사들의 암살 담당을 지시 할 때 파체파는 자유민주주의 세계로 망명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나중에 ‘나는 산업 간첩이었지, 차우셰스쿠 일가의 부하 겸 살인자가 아니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파체파는 1978년 7월 서독으로 출장을 갔다 로므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로므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놀라운 사실을 많이 폭로했습니다. 미국 망명에 성공한 파체파 장군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우셰스쿠의 편집증, 정권의 인권유린, 정치탄압과 모든 악행들을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파체파 장군의 망명은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로므니아의 독재자는 파체파 장군을 자신의 최측근 고위간부로 완전히 신임했는데, 그의 망명으로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한 차우셰스쿠는 그때부터 배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해 북한식 주체사상과 독재자 신격화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1971년 방북 이후 북한식 개인숭배를 추진 중이던 차우셰스쿠는 파체파 장군 망명 사건 이후 정부 기관의 대다수 요직들에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을 기용하는 등 주요 권력을 가족, 친척과 함께 나눠 가지며 로므니아를 차우셰스쿠 일가 중심 국가와 1인 독재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는 차우셰스쿠 왕조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우셰스쿠에 대해 로므니아 공산당 내부에서도 자기 가족, 친척들만 챙긴다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89년 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공산당 고위 관리들은 로므니아의 독재자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결국 군사재판을 받고 처형을 당했습니다.


1978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온 미하이 파체파 장군은 1980년대 ‘붉은 지평’이라는 책에서 차우셰스쿠의 생각, 사고 방식과 행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폭로했습니다. ‘붉은 지평’에 따르면,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밀고자와 도청을 통해 로므니아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특히 차우셰스쿠의 아내인 엘레나는 당 간부들의 사생활과 연애 사건은 물론 부부관계까지 직접 감시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냉전시대에 동유럽 공산정부들은 국가안보보위 기관들을 통해 테러 행위를 많이 자행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은 ‘붉은 지평’에서 차우셰스쿠의 비밀 요원들이 악명 높은 국제 테러범들과 연계해 움직인다는 사실까지 폭로했습니다. 파체파에 의하면 그당시 로므니아 군수산업 부문도 차우셰스쿠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외화를 벌기 위해 불량국가들과 테러 집단에 무기를 많이 수출하곤 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의 ‘붉은 지평’은 차우셰스쿠가 가장 두려워했던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비밀 경찰은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책이 로므니아로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처럼 독재정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북한을 탈출한 고위 망명자가 있습니다. 고위급 망명 인사 중, 한국으로 망명했다 2010년 말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각납니다. 북한 주체사상의 입안자로 알려진 황 전 비서는 한국으로 망명한 후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의 인권 유린과 관련된 많은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황장엽 전 비서는 북한의 상황이 과거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보다 10배는 더 열악하다고 말했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독재정권 아래서 자랐던 저는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등진 고위급 로므니아, 구소련과 북한 망명자들을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그들 대부분이 독재정권 하에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정권에 의한 범죄, 인권유린과 탄압을 폭로하기 위해 망명했습니다. 로므니아의 파체파 장군, 그리고 북한의 황장엽씨도 북한 고위급 외교관 출신 태영호 한국 국회의원도 이런 범주에 속합니다.


5년전 북한 주 영국 대사관 공사 출신 태영호 의원의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그 책에서 태영호 공사는 평양 심장부, 또한 김씨 일가에 의한 노예 제도 해방을 위해 의미 있는 글들을 많이 썼습니다. 앞으로 태영호 국회의원이 펴낸 책이나 태영호 의원과 다른 북한 고위급 망명자들의 모든 노력과 활동이 로므니아 ‘슈퍼 스파이’ 출신 파체파 장군의 ‘붉은 지평’처럼 한반도의 역사 흐름을 바꿔 놓을 날을 기대해 봅니다.

 

에디터 김소영,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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