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노동운동과 민주화
2024.08.20
공산주의 국가들은 ‘노동자 지상낙원’이라 주장하지만 모든 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노동운동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들을 민주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노동운동은 민주 국가에서 주 5일 근무제와 다른 기본적 노동권을 얻는데 기여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현재 노동 조합 조직율은 12퍼센트에 달합니다. 한국 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 고용주 및 노동 간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구조와 모델이 건강한 노사 관계를 정의합니다.
35년전 1989년, 동구라파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졌습니다. 1980년에 설립된 뽈스까 (폴란드) 자유 노동 조합이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전기기술자 출신 37세인 레크 바웬사는 뽈스까 발트해안의 항구 도시 그다니스크 노동자들과 다른 뽈스까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도중 자유 노동 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뽈스까의 그다니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은 바웬사가 자유노조를 조직하기 이전에도 공산주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 뽈스까 공산주의 정부는 전투 경찰을 보내 무차별 총격을 가해 노동자 80명 이상이 숨졌고 1,0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전기기술자이던 바웬사는 1980년 자유 노조를 설립해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던 뽈스까 애국자들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뽈스까 자유 노조는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과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까지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면서 1981년말까지 회원 수는 900만 명이 됐습니다.
즉, 뽈스까 인구의 약 4분의 1은 자유 노조 회원이 된 것입니다. 동시에 '농민들의 자유 노조'까지 포함해 뽈스까 곳곳에서 다른 자유 노조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뽈스까 공산주의 정부는 1981년말 계엄령을 선포해 자유 노조를 금지하고 바웬사를 체포해 1년 동안 투옥했습니다.
1983년 노벨평화상을 탄 바웬사는1987년부터 1990년까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당시 합법적이지 않은 자유 노조 임시진행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공산주의 독재를 계속 반대했습니다. 1989년말 바웬사는 제2차 대전이후 뽈스까 최초로 공산주의가 아닌 연립 정부를 조직했습니다. 그것은 뽈스까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로 향하는 길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뽈스까에 이어 마쟈르 (헝가리)와 체스꼬슬로벤스꼬도 (체코슬로바키아) 반공산주의 무혈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90년말 바웬사는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 후 1995까지 뽈스까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바웬사는 쉽지 않은 전환기에 뽈스까를 지도하면서 경제 개혁의 길을 확실히 택했습니다.
전환기는 뽈스까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시기였지만, 뽈스까는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공산주의 독재로부터 해방된 후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뤄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공산주의 시대 때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뽈스까 자유노조의 운동은 뽈스까 주민들과 다른 동구라파 사람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삶을 맛보게 했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공산주의 독재의 탄압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 뽈스까 자유노조의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 살다 자유를 되찾은 동구라파 사람들은 바웬사가 이끈 뽈스까 노동자들이 보여준 용기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동구라파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35년이 지난 지금 이제 냉전시대의 유물로 남아 있는 공산주의 독재국은 북한과 꾸바 (쿠바) 밖에 없습니다. 몇 개월 전 중국 파견 북한 근로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인권과 노동권을 사악하게 탄압하는 북한에서도 과연 앞으로 바웬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뽈스까의 교훈은 노동자들이 ‘노동자 지상낙원’이라 주장하는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반대하기 시작하면 그 체제를 유지하기 불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