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자유의 전사’ 레이건 전 대통령의 유산을 기념하며
2024.06.11
로날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은 20년전 2004년 6월 5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대통령 직을 연임했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생애는 ‘American Dream,’ 한국말로 ‘미국의 꿈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정치 무대에 등장해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1966년 미국 서부 갤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습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두 번이나 출마했지만,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끈기로 마침내 대통령으로 선출돼,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제40대 대통령을 연임했습니다. 그는 소련이 지배하던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을 주도하고, 사실상 승리하면서 역사상 위대한 미국 대통령과 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예인 출신 레이건 대통령의 웅변은 사람을 감독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강력한 힘의 미국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유머 감각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농담을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됬을때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레이건에게 어떤 종류의 주지사가 될 것이냐고 물었는데, 연예인 출신 레이건은 ‘주지사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1981년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이 일어나 레이건은 총에 맞았습니다. 수술 받기 직전 심한 부상을 입은 레이건은 여전히 농담할 힘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응급실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공화당 당원이시죠..’
레이건 대통령은 수술 후에도 여전히 진정제를 맞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한 간호사가 그의 손을 잡고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깨어나 첫마디로 또 농담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간호사에게 : “낸시도 우리 관계에 대해 알고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낸시는 레이건 대통령의 아내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레이건의 현명한 말을 오늘날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는 인간이 고안한 가장 명예로운 정부 형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희생할 가치가 있습니다.’ ‘정보는 현대의 산소입니다. 정보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벽을 통해 스며들고, 전기가 흐르는 국경을 넘나듭니다.’ ‘인간은 선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옳은 것은 언제나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모든 생명에는 목적과 가치가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구분했습니다.
특히 동구라파 사람들은 레이건 대통령에 감탄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전쟁을 하지 않고 강력한 힘의 미국을 건설하고 연설과 협상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로므니아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셰스쿠의 공산주의 독재체제하에서 저의 외할아버지와 ‘자유유럽방송’이나 ‘미국의 소리’와 같은 외국 방송을 몰래 들으면서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로날드 레이건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웅변은 동유럽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표현하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전 소련 지도자들보다 융통성이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의 관계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개혁과 개방 정책을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지혜로운 지도자 답게 합리적으로 협상을 하며 전쟁없이, 냉전 시대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독일의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한 베를린 장벽을 보고 그 장벽을 빨리 없애라고 말했습니다. 로므니아 사람들까지 포함해 많은 동유럽 사람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는 데 레이건 대통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레이건 대통령과 관련된 뉴스를 들을 때 어느날 로므니아가 개방되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방문할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속에서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20년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드디어 레이건 전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낼 기회가 왔습니다.
저도 2004년 6월 9일, 레이건 전대통령의 관이 실린 마차가 지나가는 것도 직접 보러 가고, 수만명의 미국인들과 함께 네시간 동안 줄서, 레이건 전대통령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의사당에 들어가 조문했습니다. 그날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일반 사람들이 관이 실린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임기를 두번이나 마치면서 미국의 경제는 활발해지고 그의 외교 정책도 성공했고, 일반 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93세의 삶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강력한 외교 정책덕분에 자유를 되찾은 동구라파 사람들도 ‘자유의 전사’이던 레이건 전대통령이 사망한 지 20년후에도 계속 존경하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