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너무 다른 남북한의 해외 파견근로자
2023.12.11
최근 북한에서는 해외 파견 노동자 교환이 한창입니다. 코로나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3년만에 북한으로 돌아가고 대신 새로 노동자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파견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하여 2017년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 2375호에서 회원국들의 북한 노동자에 대한 고용 허가 부여를 금지했고, 이어 채택된 2397호에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모두 송환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중지되었던 해외 노동자들의 송환이 가능해진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 하에 북한의 해외노동자 파견이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도 1963년 12월부터 외화를 벌기 위해 서독에 노동자를 파견했습니다. 당시는 개인의 해외 입출국이 통제되던 시기여서 국가가 직접 서독정부와 계약을 맺고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습니다. 올해 남한에서는 서독 근로자 파견 60년을 맞으며 그들의 삶과 업적을 다시금 돌이켜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그들과 만나 오찬도 하고 신문과 방송 등에서는 그들이 남한경제발전을 위해 바친 헌신과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에서는 이를 “민족의 주체성을 망각한 인력 수출”이라며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늘날엔 북한이 다른 나라에 해외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독에 파견되었던 남한 근로자와 중국,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의 상황은 너무 다릅니다. 당시 서독파견 근로자들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광업 그리고 병원에서 기피하는 간병일을 맡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받는 월급은 한국의 5~8배였습니다. 그들은 서독회사에서 직접 월급을 받아 자신이 처분했습니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번 돈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했습니다. 오늘 북한의 해외노동자들도 중국과 러시아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회사가 일감을 직접 수주하여 일을 시키지만 노동강도는 매우 높습니다. 월급은 북한 회사가 받아서 지불해주는데 번 돈의 10%도 안되는 돈만 본인에게 줍니다. 노동자들은 그 적은 돈에서 생활비를 떼고 나면 3년동안 절약해서 돈을 모아도 겨우 2~3천 달러밖에 안됩니다. 가족에게 돈을 직접 송금할 수도 없습니다.
서독에 파견된 남한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고 힘들게 일하면서도 서독의 대학과 전문학교에서 학업을 병행해서 기술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독일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결혼하고 서독에서 살 수도 있었습니다. 서독에서 공부를 하고 대학교수, 의사, 공무원으로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노동비자를 받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북한노동자들은 기숙사에 억류되어 집단생활을 하면서 감시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나라 거주나 다른 나라로 이주를 시도하면 반역자로 체포되어 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서독에 간 한국근로자들이 송금한 돈은 당시 1 달러도 귀했던 남한의 상황에서 국가외화소득이 되었고 남한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남한은 서독에 근로자파견을 시작 10년 후인 1973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배, 20년 후인 1983년에는 56배로 성장했습니다. 남한에서 서독 근로자 파견은 1976년까지 지속되었고 연 인원은 1만 9천명이었습니다.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자수는 2017년 추정에 의하면 11만~13만명으로 남한보다 6배 넘게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들이 번 돈의 대부분을 국가가 직접 거둬들였지만 20여 년이 넘은 오늘 1인당 국민소득은 1.7배 증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해외 파견 노동자의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북한에서는 해외로 가서 일하겠다는 노동자가 줄을 섰습니다. 북한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직장에 출근하는 것보다는 해외에 가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오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외 노동자 파견이 왜 이렇게 판이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