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괴뢰지역 ‘대한민국 것’들
2023.11.27
11월 24일 북한은 정찰위성발사를 계기로 남한이 9.19 남북군사분야합의서의 일부 내용을 폐기하도록 조치한데 대해 반발하여 국방성의 이름으로 공식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공식성명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했던 군사적 조치를 철회하고 분계선지역에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장비를 전진 배치하겠다”고 남한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한 정부를 ‘대한민국 것’이라고 폄하했습니다. 북한에서는 7월 김여정의 이름으로 된 담화에서는 ‘대한민국 족속들, 대한민국 군부깡패들’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내부에서는 남한을 ‘괴뢰지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올해 초부터 남조선을 괴뢰지역이라고 쓰기 시작했고 중앙텔레비전방송에서는 아시아올림픽을 중계하면서 남한을 괴뢰지역이라 불러 사람들을 아연케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시초는 올해 초 북한에서 제정한 평양문화어보호법입니다. 이 법에서는 남한말을 괴뢰말, 괴뢰말 찌꺼기로 폄하하면서 외부정보유입과 그로 인한 남한식 부름말, 어휘표현, 철자법, 억양, 이름 짓기, 말투 등을 박멸하며 그를 위반할 경우 최고 무기노동교화형과 사형, 경한 경우에는 벌금을 물리도록 했습니다.
북한은 1949년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한 이후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남한을 남조선으로 불러왔습니다. 냉전시기 남북은 서로에 대해 괴뢰정부라고 비난했지만 상대 측의 이름은 각각 ‘남조선’, ‘북한’으로 불러왔습니다. 남한과 북한, 남조선과 북조선, 서로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남북이 각기 한반도를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하나의 강토로 여겨왔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통일문제에 남한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김일성은 생전에 조국통일을 민족최대의 과업으로 내세웠습니다. 김일성은 남한에서 혁명을 일으켜 북한과 같은 정치체제를 만든 다음 통일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에 남조선부서를 만들고 남한 혁명을 직접 지도해왔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연이은 붕괴, 북한의 경제적 파산,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의 꿈은 깨졌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대한민국에 의한 흡수통일의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이를 막기 위해 선군정치라는 미명하에 군사독재로 이행했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했으나 핵무기를 가지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핵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시장경제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불신으로 인한 경제체제의 경직 등으로 북한경제는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나라 특히 남한의 경제발전이 북한 지도부를 위협하는 다른 요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남한 소식의 확산은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터지게 할 무서운 폭탄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적게 잡으면 20:1, 많이 잡으면 50:1 입니다. 이러한 남한의 발전상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발전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북한을 철저히 봉쇄하는 한편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기 위해 선전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한 북한 지도부의 초조함, 불안감이 이해는 되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문건, 공공 선전물에 것들, 족속, 깡패라는 저속한 표현을 쓰고, 남조선이라는 말조차 두려워 괴뢰지역으로 표기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속한 말들은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 사회주의 문명국이라는 자화자찬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