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수매양정성과 사회주의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19.11.18

알려진데 의하면 북한이 내각 수매양정성을 없앴다고 합니다. 수매양정성은 농업성의 국으로 축소되었습니다. 1957년 제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직된 수매양정성은 국가수매양정위원회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60여 년 간 존재했었습니다. 그 수매양정성이 역사의 뒤 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수매양정성은 1948년 조직된 내각 농업성의 수매양정국을 성으로 승격시키는 방법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전후 북한은 농업협동화를 통해 농업생산을 국가가 관할하게 만들었습니다. 협동농장은 협동농장에 소속된 사람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된다고 하지만 북한의 협동농장은 실제에 있어서는 국영농장이었습니다. 협동농장은 국가가 하달한 농업생산계획을 집행해야 했고 생산된 알곡을 모두 국가에 의무 수매해야 했습니다. 북한은 전국의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알곡을 모두 수매 받아 국가가 가공하고 배급소를 통해 주민들에게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식량공급시스템을 가동시킬 목적으로 수매양정성을 조직했습니다.

조직 이후 수매양정성은 내각의 가장 주요한 기관에 속했습니다. 주민들의 주식을 책임지는 일도 중요했지만 동시에 주민들에 대한 행정통제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매양정성 산하 각도시군 수매양정국과 수매 양정부는 연말이면 모든 주민들이 식량공급표를 작성하도록 했고 매달 출근율에 근거해서 배급표를 공급했습니다. 또한 전국에 배급소를 만들어놓고 월 2회씩 식량 공급표에 근거해서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 식량배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출근일수에 따라 배급표가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직장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식량공급제를 사회주의의 우월성으로 선전했습니다. 1kg에 56전을 들여 구입한 쌀을 국가에서 손해를 보면서 8전으로 공급한다고 했습니다. 쌀값이 너무 싸서 하루만 일하면 쌀값을 벌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쌀값걱정을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민들은 항상 배급량이 부족해 고생하면서도 이를 당과 국가의 배려라고 하는데 대해 이의를 갖지 않았습니다.

1990년 이후 식량배급제의 파산으로 수매양정성이 할 일이 거의 없게 되었지만 북한지도부는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어떻게 하나 배급제를 복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식량배급제를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알곡을 국가수중에 장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규찰대를 세우고 지어 군대까지 동원했지만 부정부패의 확산으로 생산된 알곡이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또한 시장은 필요한 식량을 수입하여 주민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국가는 식량 구입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후에도 30년, 화폐개혁 실패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북한지도부는 식량배급제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았습니다. 재작년에는 명색만 남아있던 배급소를 없앴고 오늘은 수매양정성을 없앴습니다

수매양정성의 해체는 사회주의경제의 해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수매양정성이 생기든 없어지든 관심조차 없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배급제로 복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배급제가 무너진 초창기에는 힘들었고 그로 인해 많은 아사자들이 생겼지만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배급제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주식이 강냉이밥에서 점차 이밥으로 바뀌고 있고 식생활이 배급제시기에 비해 더 풍족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지도부는 여전히 시장경제 도입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수매양정성의 축소가 보여주는 것처럼 북한지도부가 시장을 계속 외면한다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권도 결국은 지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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