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조선왕조시대보다 더 심한 장리 쌀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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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북한 농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알곡만이 아니라 현금도 분배했다고 하니 역구도 농장원들은 최소한 한해 먹을 식량은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사계절 힘들게 일하고도 한해 농량조차 받지 못하는 농가가 상당히 많습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농민들이 농장에 나가 일하면 제공한 노동의 양과 질을 작업 공수로 평가받았고 가을 추수가 끝나면 그 공수에 따라 알곡과 현금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농장원들은 농량조차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농사가 안되는데다 국가에서 내라는 알곡량이 오히려 더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분배를 받지 못한 농장원들은 ‘장리 쌀’을 꾸었습니다. 장리 쌀은 봉건사회 때 생겨난 제도로, 흉년 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조선왕조시기, 빌린 곡식의 6개월 이자는 보통 50%였고 이를 장리(長利)라 불렀습니다. 주로 쌀을 빌리고 갚았기 때문에 ‘장리 쌀’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50% 이자가 너무 높아서 “장리 쌀 빌려 먹고 기둥뿌리 빠진다”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북한에서 장리 쌀의 이자는 50%가 아니라 무조건 100%입니다. 개인들 간에는 물론 협동농장 작업반이나 분조도 영농자금이 없어 비료, 비닐 박막, 농기구 등을 시장에서 구입할 때, 가을에 현재 값의 두 배의 알곡으로 물어줄 것을 약속하고 물자를 구입합니다. 물론 북한은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돈을 빌릴 때 이자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주로 장사를 위해 돈을 빌리며 연간 평균 이자율도 장리 쌀 보다 낮습니다. 농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장리 쌀을 빌립니다. 농촌은 돈이나 물자가 넉넉하지 않고 유통도 잘 안되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는 농사가 잘된 해에도 농장원들이 먹을 식량이나 겨우 생산하는 영세한 농장들이 많습니다. 이런 농장에서는 지금 농장원들에게 몇 달분의 식량밖에 공급하지 못하는데 꾼 알곡을 두 배로 물고 나면 당장 먹을 식량조차 없는 가구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장리 쌀을 꿔야 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게 되고 생계는 나날이 어려워집니다.
조선왕조시대 때도 장리 쌀의 피해가 너무 커서 국가가 나서서 쌀을 꾸어 주고 낮은 이자로 가을에 가서 갚도록 하는 환곡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부패한 관리들이 갖은 수법을 동원하여 빌려준 곡식의 이자를 오히려 더 높이 받았기 때문에 환곡제도가 폐단으로 되기는 했으나, 북한이 착취사회라고 비판하는 봉건국가에서도 가난한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북한 당국은 2022년 국가가 농장의 빚을 탕감해주는 조치를 취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농사가 안된 농장은 현물세를 면제해 준 것과 같이 군량미를 면제해 준다는 대책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북한 농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북한에서 도시의 가난한 가정들은 강냉이 죽을 먹지만 농촌에서는 풀 죽을 먹습니다. 보릿고개 때면 밥을 먹지 못해 일하러 나가지 못하는 가구들도 생겨납니다. 농촌은 1년 내내 전깃불조차 볼 수 없고 수도도 없이 생활합니다.
올해 농사가 잘되었다고는 하나 농사가 안된 농장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농민들이 살게 하려면국가가 군량미 등 각종 명목으로 거두어가는 양곡 수탈량을 결정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먹을 농량조차 생산하지 못한 농장에는 국가가 쌀을 수입하여 공급하는 대책도 세워야 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