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불안한 북한의 알곡 예상 수확고
2023.09.18
북한에서 가을걷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신문은 전당, 전국, 전민이 떨쳐 나 가을걷이를 다그치며 그를 위한 물질적 노력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올해 북한의 농사 작황은 괜찮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식량생산에 사활을 걸고 나서 투자를 늘렸고 기상조건도 괜찮았습니다. 8월 말에 전국적으로 예상 수확을 판정했는데 ‘고난의 행군’ 이후 연간 580만톤으로, 최고의 알곡 생산량을 보였던 2016년의 기록을 훌쩍 뛰어 넘을 것이라는 게 농업성의 판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남한전문가들의 평가는 알곡생산량이 평년보다 조금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농민들은 이를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알곡 통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평뜨기에 의한 포전별 농작물 예상 수확고 판정입니다. 평균적인 토지조건과 평균적인 작황을 가진 논밭에서 일정한 면적에서 난 수확량을 측정하고 그것을 전체 면적을 곱하는 방법으로 예상 수확고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측정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예상수확고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김일성은 1000만톤의 알곡생산고지 목표를 제기하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했습니다. 김일성은 거의 매해 농업대회를 열고 전국의 관리위원장과 리 당비서, 3대혁명 책임자를 불러들여 총화를 지었는데 계획을 완수한 농장간부들은 앞자리에 앉히고 표창했습니다. 약삭빠르게 알곡생산량을 부풀려 보고한 간부들은 선물시계도 타고 훈장도 받았습니다.
협동농장에서 알곡생산량을 부풀리면 그만큼 국가에 더 많은 알곡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국가의 통제가 강해서 알곡은 전부 국가가격으로 의무수매 해야 했기 때문에 간부들이 모자라는 수매양곡을 마련하느라 고생했지만 농장원들은 그리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생계비가 급등했고 알곡의 국가가격과 시장가격의 격차가 10배 이상 커지고 알곡통제도 허술해졌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든 국가에 알곡을 적게 바치고 빼돌린 분량을 시장에서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협동농장 간부들은 이전과 달리 알곡예상 수확고를 줄이기 위해 전력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를 막기 위해 2022년 최고인민회의에서 “허풍방지법”을 제정하고 검찰, 사회안전기관까지 동원해서 감독통제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법적 제재를 가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북한 농장에서는 알곡 예상 수확고를 스스로 더 높이 선정하는 이상 현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올해 초부터 북한 지도부는 알곡생산을 첫째 가는 경제목표로 정하고 간부들과 농장원들을 다그쳐왔습니다. 8월에는 김정은이 수해피해를 입은 강원도와 평안도를 직접 찾아가 간부들을 강하게 질책한 뉴스를 신문방송에 소개했습니다. 금년 알곡생산계획 수행 총화결과에 따라 간부들의 운명이 결정되게 된다는 것을 사전에 예고한 것입니다.
간부들은 이전처럼 알곡을 빼돌리기는 고사하고 계획을 어느 정도라도 수행하지 못하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간부들은 경제적으로 손해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알곡생산량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곡생산량을 부풀리면 간부들은 살아날 수 있겠지만 농장원들은 죽을 맛입니다. 부풀려진 알곡생산량에 따라 국가수매계획이 늘어날 것이고, 그것을 바치고 나면 농장원들에게 차례지는 몫이 줄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농장원들에게 한해 필요한 식량조차 분배하지 못할 농장들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가 알곡생산량을 늘리려면 농민들이 노력한 것만큼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