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고난의 행군은 영웅서사시?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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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노동신문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추억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어 반감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붉은기 높이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지키고 빛내인 영웅적인 연대’라는 표제 하에 ‘고난의 행군의 승리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던가’,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 등의 기사를 통해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려운 가운데 추진했던, 건설장에서 위훈을 세운 군인들과 노동자들을 내세우고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에 대해 칭송했습니다.
노동신문에 대서특필한 고난의 행군은 북한 주민들로서는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악몽입니다. 그 시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가정이 전시상황에나 비교될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극복 대책을 세울 대신 정권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무리한 건설만 추진했습니다. 노동신문에서 자랑한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장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영양실조와 사고로 희생되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평양-남포고속도로 건설을 삽과 곡괭이, 정과 망치로 해내느라 청년들이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자강도 군수공장 노동자들은 배급이 끊겨 산에 소토지를 일구고 강냉이를 심어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신문에서는 고난의 행군의 주요원인이 “전쟁이 아닌 평화시기에 한 개 도시가 아니라 한 개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봉쇄”라고 했지만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에 가장 많은 물질적 지원을 한 국가는 중국, 소련이 아니라 미국과 남한이었습니다. 봉쇄는 체제붕괴가 두려워 북한 지도부가 자행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해 국경경비를 강화했고 북송된 주민들을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에 구금하고 사망하도록 방치했습니다. 동시에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간부들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숙청 작업과, 농장 옥수수를 훔치고 소를 잡아먹고 전선을 잘라 팔아먹었다는 죄명으로 힘없는 주민들을 공개 처형하는 데 전력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의 “선군장정 천만리, 야전솜옷, 쪽잠과 줴기밥, 달리는 집무실”을 칭송했지만 그 시기 전속 일본인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고급요리가 공수되던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지도부가 정권 유지를 위한 근시안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경직된 사회주의체제수호에 몰두한 결과 초래된 것입니다. 이 시기 개혁개방정책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현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 지도부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난의 행군을 다시 무대로 불러내고 있는 것은 북한의 상황이 그 때를 연상시킬 정도로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한은 예방주사 없이 코로나를 막기 위해 국경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중국과 무역이 끊기자 북한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시장이 위축되자 가계의 수입이 줄고 물가는 뛰어올라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주민들이 늘고 아사자가 생겼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대책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 더 못합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생계를 해결해 주는 대신 평양 건설을 비롯하여 고난의 행군시기보다 더 많은 각종 건설동원으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편,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강도 높은 주민 통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구실로 탈북을 막기 위한 국경봉쇄를 강화하고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한 간부 숙청, 공개처형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주민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이루어 낸 최고의 성과는 시장경제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를 없애고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를 되살리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에 대한 사상적 세뇌를 위해 고난의 행군을 수령의 현명한 영도 밑에 제국주의와 맞서 싸워 승리한 영웅서사시로 둔갑시키고 있어 고난의 행군시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