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평양으로만 가는 과일
2022.08.29
북한신문과 방송에서 올해 처음 수확한 사과를 평양시민들에게 공급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노동신문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는 우리 당의 뜨거운 사랑 속에 대동강과수종합농장에서 수확한 첫물 사과가 수도에 도착하였다"면서 사과를 실어 나르는 과일수송대 사진도 냈습니다. 북한에서는 2015년부터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해마다 첫물 복숭아와 사과를 공급하는 것을 정례화하고 있습니다.
첫물 과일을 공급하는 상황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같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사과를 공급받으며 감격에 겨워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방주민들은 “평양시민만 사람인가?” 이렇게 반문하며 소외감을 느낍니다.
상품공급제는 상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존재하는 공급 방식입니다. 사회주의경제는 주민들의 수요에 비해 상품공급이 부족했으므로 모든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고르게 분배하기 위해서 식량, 간장, 된장, 소금, 신발 등 필수 소비품에 대해 공급제를 실시했습니다. 부족한 상품에 대한 공급제를 실시하려면 국가가 그 상품의 생산과 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국가경제가 파산하면서 국가는 공급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북한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비록 물가는 높아졌지만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상품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북한에는 사과, 복숭아 공급처럼 국가공급제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국가공급제는 지난 시기처럼 모든 주민들에게 고르게 물건이 차례지도록 하는 공급제가 아닙니다. 현재 북한엔 시장가격과 국정가격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격의 차이가 거의 20배나 되므로 국가에서 상품 공급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추가적인 수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가공급제는 노동의 양과 질에 의한 분배나 모든 주민들 대상으로 하는 평등 공급이 아니라 국가적 필요에 따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부를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시기 사회주의의 중요한 구호는 ‘평등’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부익부 빈익빈을 비판하면서 “착취와 압박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경제가 부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를 줄이기 위해 부자들에게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는 등 세금제도를 이용하여 부의 재분배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시장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의 재분배 체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불평등한 공급제를 통하여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평양시민들에게는 과일 뿐 아니라 식량, 공업품, 맥주, 식당음식 등을 국정가격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평양시민들에게만 공급되는 국정가격의 상품은 지방주민들이 생산한 것입니다. 그들은 생산한 상품을 거저나 다름없는 낮은 가격으로 국가에 바쳤고 평양시민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코로나사태 때도 군대를 동원하여 평양시민만 보호했고, 평양을 국제적인 도시로 건설하기 위해 지방의 인적 물적 자원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논리대로라면 평양이 지방을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방주민들이 평양시민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지방주민들은 평양시민들을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론 미워합니다. 결국 국가에 의해서 평양과 지방간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대립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2016년 평양시 인구는 287만 명으로 북한 전체 인구의 11.5%입니다. 북한지도부는 평양시민만 있으면 북한체제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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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