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해방탑’이라는 계륵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4.08.19
[김현아] ‘해방탑’이라는 계륵 '조국해방의 날'(광복절)을 맞아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15일 해방탑을 찾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올해 815, 광복 79돌을 맞으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해방탑에 헌화하고 조선 해방의 역사적 성업 실현에 고여진(바쳐진) 소련군 장병들의 위훈을 추억하고 경의를 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김정일 시기에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해방탑을 김정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찾은 것입니다.

 

해방탑은 조선 해방전투에 참가한 소련군을 기념하기 위해 1947년에 건설되었습니다. 해방탑은 평양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모란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방탑에서 내려다보면 대동강과 능라다리, 옥류교, 그 너머 동평양이 넓게 펼쳐져 있고 평양 중심의 창전거리, 조선혁명박물관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던 시기에 건설한 기념탑이다 보니 좋은 위치를 선점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해방탑에 대해 잘 모릅니다. 평양 사람들도 해방탑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모란봉에 놀러 가서도 해방탑에 가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강했던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해방탑은 북한 당국이 명절 때마다 챙기는 중요한 정치적 기념비였고 주민들도 즐겨 찾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 후반기 당의 유일사상체계수립과 함께 소련 지우기가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의 해방탑 접근이 통제되었습니다.

 

북한이 가장 지우고 싶어 했던 것은 ‘소련에 의해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북한은 1960년대 말 조선노동당역사를 김일성혁명역사로 바꾸면서 1940년대 항일 빨치산이 소련 하바롭스크 지역에 위치한 극동사령부 산하 88 특별여단에서 중국 항일연군 소속으로 훈련받은 사실을 제외시켰습니다. 대신 김일성과 빨치산이 국내에서 소부대 활동을 벌였다는 것을 확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고향이 소련이라는 것을 숨기고 백두 밀영을 고향집으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194589일 김일성이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 명령을 내렸으며 그에 따라 빨치산부대가 조국으로 진격해 일제를 타승하고 조국을 해방했다고 서술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1992년 김일성의 회고록이 발표되면서 소련에서 훈련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이후 2017년 출판한 조선노동당역사에서는 김일성이 소련군과 함께 총공격명령을 내렸고 소련군과 함께 항일 빨치산이 북한에 진주했다고 수정했지만, 이것 역시 사실을 오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815일을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역사는 그 나라 주민의 집단적인 감정과 정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중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치에서 역사는 매우 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필요할 때마다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과거를 불러내곤 합니다. 특히 북한에서는 역사를 수령이 독점하고 수령의 요구에 맞게 가공해 왔습니다. 기념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기념비를 만들고 보존하는 것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해 왔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북한 전역에 있던 소련군 참전 및 추모 기념탑 13개를 철거하거나 빨치산 기념비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해방탑까지 철거할 결단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위치,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득보다 손실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러시아와의 관계가 껄끄러울 때는 해방탑을 무시하고 관계가 절실할 때는 챙기면서 적절하게 이용해 왔습니다.

 

북한은 해방탑을 2차에 거쳐 보수하면서 비문의 그림과 내용을 수정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부터 조선 인민을 해방하고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 군대에 영광이 있으라! 1945년 8월 15일”이라는 핵심 문장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백두혈통이 통치의 기반으로 되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역사를 솔직하게 인정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소련에 의한 해방의 증거물인 해방탑은 계륵과 같은 존재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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