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정홍란은 되지만 영화는 안 되는 비사회주의
2024.06.17
오늘 북한에서 창작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1년에 1~2편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광으로 소문난 김정일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한해에 20~30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1990년대 국가경제가 파산하면서 영화 창작건수가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김정은 시기에 들어서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져서 영화 창작은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 비사회주의 철퇴를 맞고 영화예술인들이 해임, 철직, 혁명화 처벌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예술분야에서 외국풍은 북한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무대예술 공연에서 제일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5년 대동강에 무대장치를 띄우고 진행한 당창건 70돌 경축 대공연에서부터 공연예술분야에서는 기존의 진부한 형식을 타파한 새로운 형식의 무대가 출연했습니다. 특히 2022년 9월 김정은의 참가 하에 열린 공화국 창건 69돌 대공연은 너무 이색적이어서 전문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남한의 신문방송에서는 제일 많이 출연한 정홍란의 모습을 “레고머리로 불리는 바가지(풀뱅)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파격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탈리아계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가 유행시켰던 머리모양이다. 바지 정장 차림의 그는 역시 바지 정장 차림의 백댄서와 무대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류경이 부른 인민공화국 선포의 노래 편곡도 북한식이 아닌 외국식이었습니다.
이번 사상투쟁회의에서 영화의 의상, 소품, 줄거리, 주제 등에서 외국적인 요소들을 끌어 들였다는 것이 지적되었는데, 공연예술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청년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고 김정은의 높은 평가도 받았습니다. 공연예술에서 칭찬받은 외국풍이 영화창작에서는 비사회주의로 낙인 찍혀 비판을 받고 창작가들은 처벌을 받았으니 사상투쟁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외국풍, 비사회주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헛갈려 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은 2012년 공식취임 후 처음 한 신년사에서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새로운 국가건설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사회주의 문명국의 핵심 용어인 문명은 고도로 발전한 인간의 문화를 의미합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문명국의 특징을 최상의 문명을 최고 수준에서 창조하는 국가로 규정했습니다.
뒤떨어진 나라가 문명국가로 되자면 선진문화의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체제전복이 무서워 선진문화의 유입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세계적인 문명국 건설 욕망과 체제수호 본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는 외국의 문화를 도입한 것이 표창의 대상으로 될 수도 있고 비사회주의적인 반동문화라며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비판의 대상으로 된 영화예술부문 일꾼들의 과오의 원인은 결국 때를 잘못 만난 ‘운’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발전은 모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북한은 경제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으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것을 더 많이 모방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문가들은 물론 주민들도 외국의 것을 더 많이 접해야 합니다.
오늘 북한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의 정보 유입이 아니라 너무 외부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외국의 것을 너무 도입해서가 아니라 너무 도입하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