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마르크스, 레닌 초상화는 왜?
2024.05.27
5월 21일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었습니다. 준공식장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건물 외벽에 걸린 초상화들이었습니다. 학교 본 청사에는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김정은의 초상화가 걸렸고 다른 건물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있었습니다. 김정은 초상화의 등장은 시간상 문제일 뿐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화는 좀 뜻밖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확장되면서 많은 국가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은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우상으로 되었습니다. 사회주의국가들은 앞을 다투어 그들의 동상과 초상화를 설치했습니다. 소련군의 진격으로 해방을 맞이한 북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대까지의 기록영화나 사진에는 이들의 초상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숭배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소련파와 중국파의 도전, 그에 대한 중소의 지지 상황을 겪으면서 소련의 간섭이 자신의 권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사상적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결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7년에 당의 유일사상체계 수립을 시작하면서 도서관에 가득 차 있던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책들을 내리고 김일성 저작집, 김일성 덕성실기,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로 채웠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었던 김정일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나온 시기가 1세기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세계가 변했기 때문에 지도 사상도 변해야 하며, 시대에 맞는 사상은 주체사상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란 말자체가 사라졌고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화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김일성광장의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화만은 그대로 걸어 두었는데,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그마저 철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다시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화가 북한권력의 핵심인 당 간부들을 양성하는 학교의 중심건물에 걸린 것입니다.
왜 오늘날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다시 걸었을까? 북한이 마르크스, 레닌에 대한 충성이나 도덕적 의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지난 시기 권력유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초상화를 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북한체제 유지에 마르크스나 레닌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시 걸었을 것입니다. 냉전시기 북한의 지도자들은 당시 사회주의진영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에 복종해야 한다는데 대해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붕괴된 오늘날, 북한은 그들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그늘에서 살아가던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가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때 사회주의국가들을 결속한 기초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이었습니다. 북한은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화를 통해 사회주의진영의 복귀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주의제국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은 체제전환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계획경제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푸틴의 영구집권을 꾀하는 러시아도, ‘특색 있는 사회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과거의 사회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북한 역시 김일성시대의 사회주의체제를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는 것이 북한이 살아갈 길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