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희생을 요구하는 청년운동
2018.03.19
12일 북한에서는 '전국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 열성자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회의에서는 "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 운동이 사회주의 농촌테제의 기치높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위력한 대중운동으로 강화발전"되었다면서 "모든 농촌청년작업반, 청년분조원들이 사회주의 농촌테제 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청년전위의 기상을 남김없이 떨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농촌 청년분조 운동은 1977년 8월 평안남도 안주시의 고등중학교졸업생들의 농촌 집단진출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농촌에 진출하여 청년분조를 뭇고 농업생산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이야기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북한당국은 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의 농촌진출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외적으로는 당과 혁명에 대한 충성심, 사회주의 농업발전 기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북한은 농업노력부족으로 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낙후한 농촌이 아니라 발전된 도시에서의 생활을 꿈꾸었고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농촌을 떠나려 했습니다.
북한은 농촌인구이동을 막기 위해 행정적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옮기려면 8곳 이상 기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조건도 까다롭게 만들어서 거의 이동이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인구는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농촌에 집단진출을 하겠다고 했으니 위에서는 정말 반가웠을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농촌 집단진출운동을 확대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집단 진출한 청년들을 농촌에 정착시키기 위해 청년작업반운동 청년분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신문방송을 통해 소개해주고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은 표창도 주고 입당도 시켜주고 몇 명은 간부로도 발탁하는 등 소위 정치적 방법으로 농촌에 청년들을 고착시키려고 했습니다.
1990년 이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도시도 그러하지만 특히 농촌은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변했습니다. 30년 전 집단 진출했던 청년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졌지만 농촌에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농촌마을에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의 심정은 정말 참담할 것입니다.
남한도 산업화가 급속히 추진되면서 농촌인구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법치국가이므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동과 거주의 자유 때문에 국가가 행정적 방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구이동이 계속되었고 남한의 농촌도 고령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한에서는 스스로 농촌으로 되돌아가 농사를 짓는 귀농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2016년 귀농한 사람은 2만 여명이며 그 전해에 비해 7.7% 증가했습니다. 농업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농촌에서 살려고 되돌아가는 인구는 연 30만여 명이 넘으며 이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시에서 농촌으로 되돌아가는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농촌도 도시 못지않은 생활조건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도로가 발달해서 아무리 시골이라도 1등급 포장도로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도시와 격리된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승용차를 가지는 것이 힘들지 않고 대중교통도 편리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서울이든 부산이든 몇시간 내에 갈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도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더운물 찬물을 쓰며 가스와 전기로 밥을 하는 등 도시와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사람들이 붐비는 도시, 공기도 별로 좋지 않은 도시를 떠나 공기 좋고 물 좋고 조용한 농촌에서 사는 것이 추세로 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청년들의 희생만 강조하는 청년분조운동 청년작업반운동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한처럼 사람들이 스스로 농촌에 돌아오도록 조건을 만드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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