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쿠바는 왜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었나?
2024.02.26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남한과 쿠바는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습니다. 이로서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습니다. 1960년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남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쿠바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작지만 미제와 맞서 싸우는 나라라는 처지의 공통성으로부터 베트남(윁남)과 함께 쿠바를 가까운 형제나라로 여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한 카리브해 사태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소련을 비난하고 쿠바를 옹호했습니다. 1986년 카스트로가 소련에 무기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을 때, 김일성은 자동 보총 10만 정과 1천 600만 달러어치의 탄약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기도 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1990년대 초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을 때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1997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제14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5백 명의 북한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쿠바와의 관계는 김정은 시기에도 이어져왔습니다. 북한은 카스트로가 사망했을 때 이례적으로 3일간 국가 애도 기간까지 선포했고 김정은이 평양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찾았으며 당 및 국가대표단을 쿠바에 파견해서 조의를 표시했습니다. 2018년에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도 했습니다.
북한은 1990년 러시아가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었을 때 분노를 금할 수 없어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논평원의 글을 노동신문에 싣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이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었을 때에는 주민들에게 알리지조차 못했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쿠바를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없겠지만,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국가관계로 선포한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클 것입니다.
1980년대 말 냉전이 해체될 때 소련 중국은 남한을 승인하고 미국 일본은 북한을 승인하자는 교차승인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초기 북한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남한이 중국, 러시아 관계를 맺고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과 연이어 외교관계를 맺자 북한도 그토록 반대하던 유엔 동시 가입안도 승인하고 미국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으러 나섰지만 핵문제, 납치자 문제로 실패했습니다. 아직까지 북한이 미국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지 못한 상황에서 남한과 외교관계를 거부하던 마지막 국가마저 없어졌습니다.
북한이 그렇게 공을 들인 국가가 왜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었을까? 전문가들은 쿠바가 남한과 외교관계를 맺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내의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쿠바를 찾은 한국인 수는 연간 약 1만 4천명이었고, 교역량은 2022년 수출이 1400만 달러, 수입은 700만 달러였습니다.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한국과의 수교는 두 나라 간에 투자와 경제교류를 확대하여 쿠바가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쿠바는 북한과 달리 개방적인 나라이며 공산당 유일통치체제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환경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최근 반미적 입장의 나라들과 협력하여 신냉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 국제사회에서 대립이 격화되고 있지만 세계화가 진척된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완전한 냉전체계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각국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실리이며 그 중에서도 경제적 이익입니다. 북한이 지금 일시적으로 무기 매매로 이득을 얻는 것 같지만 북한의 현경제상황에서 군수산업의 발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이념에 기반한 구시대적 대외정책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