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음력설 귀성길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2.01.31
[김현아] 음력설 귀성길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27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가족이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 1일은 음력설입니다. 남한과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오래전부터 태음력이 도입되어 음력설을 설 명절로 쇠어왔습니다. 일본만은 명치유신 이후 양력을 도입하여 양력설을 쇠고 있습니다. 일본은 식민지 통치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양력설을 강요하였으나 음력설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남한에서는 한때 양력설을 공식명절로 지정하기도 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쇠었고 오늘도 음력설은 추석과 함께 남한에서 가장 크게 쇠는 민족적 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에서는 음력설이 사라졌습니다. 당과 국가의 주민통제력이 강하다 보니 지도부의 의도대로 전통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국가에 소속된 상황에서 국가가 양력설을 명절로 지정하고 음력설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음력설 전통은 끊어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주창하면서 1980년대 말부터 다시 음력설을 휴식 일로 지정했지만 여전히 북한주민들은 양력설 위주로 설 명절을 쇠고 있습니다.

북한의 2022년 달력에도 음력설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음력설에 큰 의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곧 김정일의 생일인 2 16일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북한주민에게 있어서 명절은 잘 먹는 날입니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평시에는 아무래도 잘 먹기 힘들기 때문에 명절만이라도 떡과 고기, 술과 각종 반찬을 넉넉하게 만들어 실컷 먹자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아직 귀한 북한 상황에서 한 달에 두 번이나 명절음식을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음력설은 대강 보내고 국가적으로 공인된 김정일의 생일을 잘 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명절인 음력설이 정치적 명절인 김정일 생일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이 남한에서 음력설을 쇠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놀라워할 것은 무엇일까아마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행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한의 음력설은 고향으로 가는 날입니다. 남한주민들은 음력설에는 너도 나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을 찾아 갑니다. 같은 지역에서 사는 식구는 물론 타도에서 사는 사람들도 승용차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갑니다. 음력설이면 15분에 1대씩 출발하는 기차표도 동이 나고 고속도로는 고향으로 가는 승용차들로 길이 막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평소보다 1.5~2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가는 길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고향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뵙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귀성 본능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양력설에 행하는 세배, 차례와 같은 가정의례가 남한에서는 음력설에 진행됩니다. 북한의 양력설처럼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소식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남한에서는 올해 음력설이 연휴까지 닷새나 되는데다 코로나 예방접종률이 86%에 이르다 보니 작년보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음력설에 고향을 찾는 풍습은 경제발전으로 인해 생겨난 것입니다. 경제성장으로 도시가 팽창해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사는 인구가 늘면서 명절에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생겨났습니다. 교통수단이 발전하면서 하루에 수천만 명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귀성 행렬의 규모를 더 늘렸습니다. 중국도 음력설에는 고향을 찾는 인구가 수십억에 이릅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아직 이러한 풍습이 없습니다. 북한의 주민 통제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주민 이동을 금지하는 통행증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교통 상황도 매우 열악합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방역 때문에 통행증 발급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북한은 코로나 예방주사도 맞지 못하고 있어 같은 도시에 사는 가족 친척도 명절에 모이기 힘들 것입니다.

음력설은 고향을 찾는 명절이지만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 탈북민들은 고향으로 가지 못합니다. 남북을 통과하는 귀성길이 열릴 그날을 간절히 희망해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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