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북한이 ‘DMZ 요새화’ 미국에만 통보한 이유
2024.10.14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0월 10일 정례기자설명회에서, “북한이 남북간 비무장지대를 요새화 하겠다는 통보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만 했는데 그 의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국과 자주 소통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북한에 물어 보라”고 대답했습니다.
북한은 올해 4월부터 강원도 지역의 비무장지대에서 콘크리트 장벽을 건설해왔습니다. 비무장지대는 전쟁 중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된 지역으로, 남북 간의 합의나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는 비무장지대에 장벽을 건설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비무장지대내에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 철도를 완전히 끊고 '남쪽 국경'을 영구 차단, 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하겠다고 미국에 통보한 것입니다.
북한이 작년 말과 올해에 걸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포하고 통일할 의지가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콘크리트 장벽 설치에 대해서 누구에게 통지한 것은 사실 불필요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비무장지대에서 수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러 왔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을 살해한 8.18 도끼만행 사건 때에도 통지 없이 불시에 사건을 일으켰고 자신들의 잘못을 선뜻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불법으로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면서도 남한이나 미국에 통보한 예가 없었습니다. 콘크리트 장벽건설은 올해 4월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통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례와 다르게 이번엔 미국에 특별히 ‘통보’를 보낸 것입니다.
콘크리트 장벽 건설은 북한주민들의 탈북을 막고, 군사적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 남북의 분단을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이를 미국에 통보한 것은 그 상징적인 의미를 국제사회에 강조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외교적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들어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밀접하게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과 러시아의 친밀한 관계는 중국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관계를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이번에 미국에 이례적으로 통보를 한 직접적 이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6월 25일을 미제반대투쟁의 날,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 반미투쟁월간으로 정하고 반미 분위기를 조장해왔습니다. 2018년 미국과 정상회담을 계기로 6.25행사를 4년 동안 중지했으나 작년부터 다시 6.25행사를 재개했습니다. 올해에도 "철천지원수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자", "미제살인귀들을 천백배로 복수하자"는 살벌한 반미 구호를 들고 요란한 반미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 앞에서는 요란하게 반미를 선동했지만, 뒤에서는 슬그머니 미국에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통보와 관련해 남한 패싱, 즉 남한을 배제한 것은 예상된 상황입니다. 북한이 남한과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언한 것은 남한이 북한에 비해 너무 발전했기 때문에 그 실상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질 경우 체제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솔직하게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핵 미사일에 대한 자랑으로 이를 만회하는 한편, 남한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체제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남한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무척 밉고 싫습니다. 그러나 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마주서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더 강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고 상대방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을 심리적으로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남한에 비무장지대 요새화를 통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