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좋은 영화 창작의 조건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0.02.17

지난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한영화 '기생충'이 작품·감독·국제영화·각본의 네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남한 주민은 물론 국제사회가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 영화계에서 가장 높이 쳐주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영화가 4개의 상을 동시에 받는 예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영화 기생충은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의 각본상 등 많은 영화제의 상을 받았습니다.

북한주민들은 남한이 영화를 잘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은 단속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몰래 밤을 새워가며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습니다. 북한당국의 단속이 심해져서 남한영화를 보기 나날이 힘들어지지만 지금도 수단과 방법을 탐구해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이전에는 쏘련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북한도 영화를 괜찮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남한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혁명성을 주입하기 위하여 교과서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북한작품만을 보던 북한주민들은 실지 생활을 보여주고 있고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남한 영화와 드라마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거기다 덤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북한 밖의 세상을 볼 수 있고 멋있는 배우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한 영화와 드라마는 북한주민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과 동남아 주민들도 남한드라마에 빠진지 오랩니다. 그리고 이번 시상식이 보여준 것처럼 서구에서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뿐 아니라 남한음악도 세계를 놀래고 있습니다. 남한의 음악단인 방탄소년단이 벌써 몇 년째 세계 음악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의 공연을 보겠다는 애호가들로 인해 만여 석이 되는 경기장이 관람자들로 꽉 차는가하면 그들의 노래를 배우겠다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일찍부터 문학예술을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보고 문학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특히 김정일은 영화예술론, 주체문학론 음악예술론, 무용예술론을 내놓으면서 문학예술의 대가로 자처했고 특히 영화발전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습니다. 야외촬영거리도 만들었고 영화예술인들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도 해주었습니다. 한때 북한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는 제18차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축전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소금>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북한영화, 드라마는 이전보다도 더 못해졌습니다. 북한 영화는 다른 나라는 물론 북한주민에게서도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남한영화는 당과 수령의 지도가 아니라 창작가들과 자본이 힘을 합쳐서 만들어냅니다. 남한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설 수 있은 비결은 우선 창작가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창작가들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문제작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은 것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작가들이 살며 자라난 환경 자체가 자유롭기 때문에 작가 연출가들이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은 영화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작비용이 영화의 수준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산업은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합니다. 이번 영화 제작비용도 125억 원(1천만 달러)가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지도부는 창작이 부진한 원인을 창작가들의 혁명성과 충성심이 부족한데서 찾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창작가들에게 자유와 필요한 자금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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