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북한이 가난한 이유’
2024.10.25
매년 10월, 한 주간 진행되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즐거운 문화적, 지성적 자극을 줍니다. 지난 14일 경제학 분야 수상자 발표를 끝으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의 막을 내렸는데요.
대런 애스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세 명의 경제학자들이 공동으로 경제학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됐습니다. 수상자들은 사회제도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는데,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공로를 인정해 경제상을 수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두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공동 집필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애스모글루는 시장의 작동 원리나 방식, 재산권, 사법 제도나 법원, 교육 등의 운영 방식,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기회 등을 통틀어서 ‘제도’라고 정의합니다. 제도는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입니다. 재산권이 누구에게나 다 보장되고 사회적 경쟁에 있어서 조건이 공정하게 주어지는 상태, 기업활동이 자율적으로 잘 보장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제도를 ‘포용적 제도’라고 합니다.
반대로 노동이 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주민들이 노동을 해도 일한 만큼 대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직업도 개인의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없고, 그 개인이 처한 가족 배경이나 속한 계층에 따라서 직업과 교육 기회 등이 제한되는 제도를 ‘착취적 제도’라 부릅니다.
따라서 포용적 제도에서 경제적 부가 형성이 되면 공공사업과 교육제도 등 공동체 전체가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발전하는데요. 착취적 제도는 권력과 영향력을 독점한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노동자가 창출한 부를 가져가도록 고안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착취적 제도의 기능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 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1950년부터 1991년까지 실행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제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국가 모든 영역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생활하도록 법으로 정해서, 경제 부문에서 소수의 백인은 사업체와 토지와 광산 등을 소유하고 생산과 제조는 흑인 노동자들이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창출된 부는 소수의 백인 자본가에게 돌아갔고 다수의 흑인 노동자에게는 일할 기회와 대가가 공정하게 차려지지 않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착취적 제도’라고 설명합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일상적으로 활용되거나, 다방면으로 새로운 생각들이 창발돼 생산성이 향상되는 데 활용되고 그래서 이런 환경에 기반하여 경제성장이 이뤄지는데,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갖춘 나라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착취적 경제 제도를 실행하는 나라에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나 창의적인 생각들이 나오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좋은 기술과 혁신으로 얻어지는 부와 성장이 착취적인 제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착취적 경제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착취적 정치 제도인데, 정치 영역에서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가 존재한다는 것은 경제에서도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경제가 잘 성장하느냐 못 하느냐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그 국가와 사회가 어떤 정치와 제도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주장을 시각적으로 훤히 보여준 두 가지 예를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미국과 메히꼬(멕시코)의 경계선에 위치한 노갈레스라는 도시입니다. 1900년대 초반. 이 도시는 미국과 멕시코로 나눠졌는데요. 한쪽은 세계 최고 부자 나라가 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여전히 치안이 불안하고 가난한 멕시코로 낙후된 상태입니다.
또 다른 예는 바로 한반도를 들었습니다.
저자들은 미국의 항공우주국이 한밤에 찍었던 한반도 사진이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의 차이의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한반도 북쪽은 평양 외에는 불빛이 거의 없이 까맦지만, 남쪽 지역은 화려한 폭죽이 터진 것처럼 전체가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한 사진입니다. 수 천 년간 같은 민족으로 살았지만 다른 성격의 제도와 정치를 가진 나라가 된 지 70년 만에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간단히 이런 결과만 봐도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 중 “어떤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더 ‘인민대중 제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명확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어느 사회에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그 개인의 인생은 물론이고 그 사회와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1998년에 소 천 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현대그룹의 창설자 정주영 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즉 북한 땅입니다. 하지만 정 회장이 남한으로 넘어갔기에 지금은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로 꼽히는 현대 그룹의 창립자로 기록됐는데요. 그렇지 않고 북한에서 살았다면 농장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 이름 없이 생을 마쳤을 수 있습니다.
오는 11월에 유엔에서 예정된 북한의 ‘보편적 인권정례검토’를 위해 북한 당국이 실무그룹에 제출한 국가보고서는 ‘향후 목표’를 밝히며 끝을 맺습니다. 북한 당국은 앞으로 인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한다는 원칙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인민 생활 개선과 국가의 전면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 하려면 북한 당국이 실행해야 할 제도와 정치는 분명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는 아닐 겁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