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은 트라우마를 치유할 문학이 있는가
2024.10.11
유엔과 세계보건기구는 10월 10일을 ‘세계정신건강의 날’로 정하고 전 세계인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선전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더 큰 공동체가 복합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우리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유무형의 폭력, 빈곤, 장애나 불평등, 인권 유린, 차별, 생명이나 신체적 위협 같이 생존과 사회 적응에 불리한 환경에 노출될 경우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이 요인들은 충격적이거나 공포스러운 심리적 압박감으로 각인되어 사람들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고요. 이 상처를 심리학 전문용어로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이 바로 심리적 충격과 공포가 만든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묘사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몸에 난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서 회복하지 못하면 더 큰 병이 되듯이, 마음과 정신의 상처인 트라우마 또한 잘 회복하지 못하면 더 큰 마음의 상처가 되고, 인생 전반이 삐걱대는 불안한 상태로 이어집니다. 개인의 정신에 난 상처와 그로 인한 불안함은 사회 발전에도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지요.
공동체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전근대 시기 인류의 불우했던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가 남긴 상처 그리고 불행한 남과 북의 ‘조선전쟁’이 우리 민족에겐 큰 상처입니다. 그 후 남한은 급격한 경제발전 시기와 민주화 혁명 시기를 거쳤지요. 70년간 500배의 국민총소득을 이뤄낸 급격한 변화와 혁명적 사회발전 역사는 남한 사람들의 수많은 투쟁과 압제, 폭력 그리고 인내와 치유, 극복으로 엮어졌습니다. 격랑의 현대 역사에서 남한 사람들 정신에 남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을 지 짐작할만 하지요.
현대 한국 발전의 역사가 낳은 정신적 부산물인 트라우마는 한국 정부의 국립정신건강센터와 기타 민간 의료기관들의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치유합니다만, 동시에 풍부한 예술 문화와 문학이 있어서 개인들의 마음과 정서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걸어 왔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10일 유럽의 스웨덴(스웨리예)에서 날아온 역사적 낭보인데요. 한국인 소설가 한강 씨가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입니다. 53세의 젊은 아시아 소설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입니다. 지난 1990년 이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 아시아인은 작가 한강을 포함해 4명이고요, 여성 작가는 한강이 유일합니다. 한국인 작가가 국제적인 문학성을 인정을 받았다는 말은 한국의 예술, 문화, 문학의 저변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말이고,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문학의 세계 또한 세계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의미입니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의 한림원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택한 이유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심리치료 전문가의 상담도 받지만, 소설과 시, 문학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 같은 문학적 분위기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국제적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의 발전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 역사가 낳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떠올리자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가 더 애처로운데요. 북한당국이 대량아사를 방치해서 수백만 사람들을 아무 대책도 없이 고스란히 굶어 죽은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와 삶의 위협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그 후로도 일상생활에서 보안원과 보위원에게 상시적으로 받는 감시와 폭력과 통제가 주는 불안과 공포도 정상적인 안온한 정서를 갖는데 심각한 장애입니다. 가난한 살림을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데 위에서 내려오는 숙제와 동원 명령을 따라야 하는 상황도 무기력을 동반한 심리적 장애요인이고요.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취향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는데도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부모의 직업과 정치적 능력으로 결정되는 상황도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해가 됩니다. 전근대적 방식의 사회적 차별과 가부장적 인식으로 직장과 사회, 심지어 가정에서도 무시당하거나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여성은 정신건강 면에서 더 취약해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어떤 국가기구를 갖춰서 주민들의 심리적 건강을 보살피나요? 오직 노동당과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서 충성만 하면 건강한 심리적 상태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지요? 인간성의 깊이 있는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세계적으로 훌륭한 고전 문학이나 예술 작품들은 북한 주민들이 손쉽게 접할 수도 없습니다. 반체제, 반동사상, 비사회주의 행위로 간주해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문화의 차단 또한 심각한 인권유린이며 트라우마의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