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세계 청년들 속의 북한인권 물결
2023.09.22
지난주 세계 각지에서 온 십여 명의 외국인들이 서울 중심에 위치한 한 회의장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라는 사회단체가 기획한 국제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희 단체는 지난 13일부터 나흘간 행사를 치뤘는데요. 지난 10년간 북한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국제사회가 우리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서 무슨 노력들을 했는지 등을 얘기하는 자리였습니다. 여러 차례의 발표와 토론이 있었는데요. 15일에 진행된 토론회가 특히 인상적이어서 청취자 여러분들께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MZ 세대의 북한인권 물결’이란 제목으로 진행한 국제 청년포럼이었는데요. 이 행사를 위해서 독일과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프리카),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왔습니다. 이 청년들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로 법학, 정치외교학, 공중보건학 그리고 한국학과, 인문학 등을 각자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이 청년들은 전공 학문 외에 북한과 연계된 지역 정치 문제와 북한의 인권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저희 단체가 한국으로 초청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각자 나라의 시민사회 활동 방안과 안건들을 소개하고 청년세대의 상상력을 동원해 북한의 인권 문제들에 접목시켜 보는 식으로 토론에 임했습니다.
한 가지 예로,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청년들의 사회참여 활동에 대한 소개가 있었는데요. 194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프리카를 지배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흑인 등 유색인종과 지배계층이었던 백인들 사이를 철저히 분리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이건 심각한 인종차별과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흑인 주민들을 이등 국민이자, 하급 시민으로 취급하는 심각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펼쳤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도자급의 직업이나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적대계층이 있고, 이와 유사하게 농민 세대 자녀는 농장원 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든 성분 정책이 있는데, 남아프리카의 기준은 피부색과 인종이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되었는데요. 남아프리카 정권의 인권유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국제사회의 영향도 컸지만, 그 나라 국민들의 오랜 노력과 투쟁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 중에 청년들의 정치 참여 운동이 일반 국민들의 생각을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유색인종을 적대계층으로 취급해서 지배계층인 백인들의 생활영역에서 배제하는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일어선 것이 바로 1970년대 중반, 학생운동이었습니다. 특히 정권의 부정부패 문제는 청년들을 반정권 투쟁으로 단합시켰고, 이 행동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발표자는 이것처럼 국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히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남아프리카 정치권 내의 부패 감시 활동이 아직도 청년 시민단체들의 중요한 활동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 친구는 북한의 청년들에게서 북한을 성장, 발전시킬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왜냐하면, 2000년대 들어서 국가의 모든 동력이 멈춘 상태에서도 북한 장마당에서는 여성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생력을 가지고 각자의 세대와 사회를 일으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청년 발표자는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청년인데요. 미국 내에도 인종차별과 성폭력, 빈부격차 등 인권 문제들이 많지만 청년 세대의 비판과 각성 운동이 있기에 정치권이 시정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의 활발한 사회참여 활동이 국가의 다양한 문제들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며, 사회변화의 한 축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년세대의 특성상 북한 내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과 인권문제 또한 세계 청년들의 관심을 끄는 문제라며, 특히 북한청년들이 강제 무임급 노동의 국가 제도로 인해 착취당하는 현실은 사회 진출을 앞둔 세계 청년들의 이목을 잡기에 충분한 안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들은 인터넷의 사회연결망에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하나의 행동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새로운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세계 청년들이 함께 모이는 ‘메타버스’라는 가상 공간을 구축해서, 언어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만나 행동할 수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었습니다. 인터넷 가상공간을 북한인권 논의와 활동 공간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들이 제안되었습니다.
이날 청년포럼에서는 이처럼 남아프리카와 독일, 미국 청년들이 자국의 인권과 사회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토론해봤는데요. 우리 북한 청년들도 세계 청년들과 함께 갖가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며 세계 청년들의 활동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세계로 나가는 것은 차치하고, 살던 도시나 도를 떠나 더 큰 도시로 이사하는 것도 불가능한 북한 청년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사는 곳을 이동하는 문제뿐 아니라, 부모님이 종사하던 직업의 종류까지 자식 세대인 우리 청년들이 종속되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 같은 관행과 정책들은 청년들의 삶과 사고를 못 움직이게 유리 장벽으로 가둬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성분에 상관 없이 능력 있는 청년들이 원하는 곳에서 개인 특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을 뽐낼 수 있는 지역으로 자유로이 옮겨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본적인 인권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또한 1940년 어간에 형성된 사회적 계층이 4-5세대 이후의 손녀, 손자들까지 성장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것은 북한의 발전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세계 청년들의 토론 속에서, 북한 청년들 앞에 놓인 성분과 계층이라는 두 가지 장벽만이라도 거둔다면 북한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해 봤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